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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태우는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 재판부가 20대 피고인을 꾸짖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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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4 17:58:13 수정 : 2025-05-14 17: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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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사고 칠 때마다 어떻겠는가. 피해자들 찾아다니며 용서를 빌고 합의금을 마련해 온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해봤느냐….”

 

14일 전주지법 제1형사부 법정에서는 김상곤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무거웠다. 평소 조곤조곤한 어투로 재판을 이끌던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법정 안 공기가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전주지법 청사 전경.

피고인 A(22)씨는 죄수 복장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재물손괴, 폭행, 주거침입 등 여러 차례에 걸친 범죄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그러나, 그가 재판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소년보호처분을 세 번이나 받았고, 성인이 돼서도 폭행, 상해,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만 다섯 번이나…그런데도 2022년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때도 아버지가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구한 덕분이었다.”

 

재판장은 마치 잊지 말라는 듯 말을 또박또박 이어갔다. 그의 입가에는 씁쓸한 회한이 맴돌았다.

 

“피고인은 눈만 마주쳤다고 시비를 걸고, 부딪혔다고 욕설을 퍼붓고, 경찰이 출석요구서를 보내도 나 몰라라 했지요? 하지만, 정작 합의금을 마련하고 피해자들 앞에 선 사람은 피고인의 아버지였습니다.”

 

법정의 차가운 침묵 속에서 A씨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고, 15분 넘게 이어진 재판장의 질책을 무겁에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무슨 말로도, 어떤 변명으로도 아버지의 땀과 눈물을 덜어낼 수 없다는 걸 조금이라도 깨달았던 걸까.

 

김 부장판사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에 나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도소에서 조금 일찍 나오고 늦게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부모, 사회, 그리고 주변을 대하는 피고인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 악순환은 또 반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재판은 끝이 났고, 그는 1심보다 한 달 줄어든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다. 법정은 다시 침묵에 잠겼고,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성치 않았는지, 아니면 또다시 징역살이해야 하는 아들 생각에 맥이 풀렸는지 쉽게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 뒷모습엔 자식을 향한 사랑과 끝나지 않은 고통이 묻어 있었다. 법정에 선 아들과 마주한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인내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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