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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우리가 일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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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4 22:47:57 수정 : 2025-05-14 22: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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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기만 한 일은 없어… 꾸준함 가질 동기 필요
일 외 일상 지탱해줄 또 다른 의미 찾는 게 중요

“발리에서 1년 살다 돌아와서 새로 직장을 구했고, 지금 두 달째 다니는 중인데 힘드네요.” 30대 초반 남성이 지친 얼굴로 푸념했다. 이전 직장에서 3년쯤 일하고 탈진한 그는 낯선 땅에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을 한 뒤 귀국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축해 둔 돈은 바닥났고 회사를 당장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서 재미도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자니 하루하루가 고역이라고 말했다. 비단 이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 거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일 테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무기력한 상태에서 “사표를 내겠다!” 같은 중대한 의사 결정은 함부로 내리지 않는 게 좋다. 우울해지면 자신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고 미래에 문제가 생길 텐데도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아!’라는 판단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다. 우울감은 자기 파괴적인 결과에 이를 게 뻔한 결정을 끌어당기는 속성이 있다. 도피 심리에 휘둘리면 나중에 ‘인생의 되돌리기 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공산이 크다. 이럴 땐 ‘우선 몸과 마음을 돌보고 컨디션이 좋아지면 그때 다시 고민해 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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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하면 번아웃에 쉽게 빠진다. 맡은 일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자신까지 무능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근무 시간이 지겹다고 삶 전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니다. ‘나의 가치’를 업무로만 증명하려 했다면 이런 마음도 내려놔야 한다.

일 외에 자신과 일상을 지탱해 줄 활동이 필요하다. 돈을 위한 노동인 만큼, 일 아닌 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퇴근 이후의 시간, 주말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은퇴 후의 삶까지 생각하면 업무 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퇴근하고 나면 무조건 쉬고 싶어요”라고 푸념하지 말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작고 소중한 활동을 찾아야 한다. 직장인 ○○○이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알차게 키워야 하는 것이다.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일의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재정의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똑같이 삽질을 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땅 파고 있잖아요”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건물의 기초를 놓기 위해 땅을 파고 있죠”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신도들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있는 중이죠”라고 말한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사람마다 품고 있는 의미가 다르고 이것에 따라 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도 달라진다.

직업에서 의미를 느끼려면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보탬을 주고,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다고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 두 가지 모두를 실감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현실의 일이란 게 재밌기만 할 리 없다. 재미없는 일을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월급이란 보상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도 흥미는 얼마 못 가 사라진다. 그러니 꾸준히 일하려면 또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고 싶다”, “조직이라는 방패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같은 세속적 이유가 일에는 항상 숨어 있다. “빚이 나를 일하게 만든다”고 외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일을 하는 진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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