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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사들의 ‘사법파동 부채질’이 실패한 이유 ③ [장혜진의 법조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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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3 11:13:42 수정 : 2025-05-13 15: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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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법관들은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섰다. 국민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성복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내부망인 코트넷에서 판사들의 집단적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창립 초기 멤버이자,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시절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시스

과거 정권 시절, 일부 판사들의 문제 제기는 거대한 사법파동으로 이어졌고 김용철·김덕주 대법원장을 중도 사퇴시켰습니다. 이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판사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여실히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부 판사들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으며 또 한번의 사법파동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대다수 판사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논란의 성격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사법파동은 사법부 내부의 자발적인 문제 제기로 촉발된 반면, 이번에는 국회 다수당과 유력 대선후보의 정치적 압박에 일부 판사들이 영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판사의 핵심 주장은 “법원이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어제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결론이나 내용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 시민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상식과는 다르게 절차가 진행된 것 같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박병곤 서울남부지법 판사)

 

“더욱 심각한 것은 사건이 소부에 배당된 지 불과 2시간 만에 어떤 이유도 설명되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전원합의체 회부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이성복 판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뉴스1

그러나 4월 22일 전합 회부, 24일 두 번째 합의기일, 29일 선고일 지정이라는 절차에 대해 정작 당시 이를 문제 삼은 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파기환송심 공판기일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주옥 부장판사조차 대법원 선고기일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30여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고 규탄한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송 판사는 과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때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적극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대법원 선고 전까지 어떠한 절차적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죄 확정이 유력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절차적 속도는 문제 삼을 이유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송 판사의 글에서는 이 같은 기대감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번 사건의 주심대법관이 불과 몇 개월 전 유사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판결이 무죄 선고의 법리적 근거로 삼은 판결이 바로 위 판결이며, 파기환송 하더라도 절차와 시간상 대선 전에 확정판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안이므로, 상고기각을 하려나보다고 생각했다.”(송경근 판사)

 

5월 1일,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분위기는 급변했습니다. 민주당은 즉각 “사법 쿠데타”, “정치 재판”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고, 그 이튿날부터 일부 판사들이 코트넷에 동조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각에선 이와 같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선고기일이 잡힐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유죄 판결이 나오자 ‘절차가 너무 빨랐다’고 주장하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일선 부장판사)

 

이 후보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 내규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습니다. 대법원 전합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는 ‘중대한 공공의 이해관계’나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에 대해서는 소부의 장기 심리 없이도 전합 회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부에서 ‘일정 기간’ 심리를 거쳐야만 전합에 회부할 수 있다는 이성복 판사의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이례적’이라는 표현만으로 절차의 위법성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장 사퇴 촉구의 정당한 근거가 되기에도 부족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둘러싼 법원 안팎의 논란을 다루기 위해 전국 법관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연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 출입구. 연합뉴스

파기환송심 공판 기일이 대선 이후로 연기된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며 법관대표회의의 입장 표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조희대 특검법’ 발의를 보류하고 법관대표회의 소집 등 내부 움직임을 지켜보겠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법관대표회의 임시회 소집 투표 결과는 달랐습니다. 전체 125명 중 26명만이 찬성했고, 3배에 달하는 70명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회의는 정족수를 간신히 채워 열리지만, 실질적인 동력은 이미 꺾였습니다. 큰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판사가 내부 분위기를 몰아가려고 하는 데 대해 다수의 판사가 반감을 느끼며 제동을 건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법관들이 대선 직전에 집단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정치적 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원 내부에 깊이 퍼져있습니다. 대다수 판사들이 민주당의 법관 탄핵 추진과 같은 노골적인 사법독립 침해 행위에 분노하면서도 현 시점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배경입니다. 

 

법관대표회의 소집 투표 결과는, 사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외침이 법원 내부 설득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법파동은 시작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묵묵한 다수의 판사가 지킨 것은 침묵이 아니라, 사법부의 균형과 독립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였습니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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