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법이 어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 재판을 6·3 대선 이후로 미뤘다. 앞서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에서 각각 진행 중인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그리고 대장동 비리 사건 1심 재판에 이은 세 번째 연기다. 서울고법은 “이 후보가 대선후보로 등록함에 따라 공판기일을 변경했다”는 입장이나,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허무는 지나친 특혜가 아닌지 의문이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대선후보 지지율과 무관하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격언부터 되새겨야 한다.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뒤 민주당은 사법부를 거칠게 압박하고 있다. 당장 이 후보 스스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사법부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면서도 “최후의 보루의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한다면 고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이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 대선후보는 헌법과 법률 위에 있다는 엄포처럼 들려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날 수원고법은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대선 이후로 선고를 미뤄야 한다”는 민주당 몇몇 의원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법과 원칙대로 선고공판을 진행한 것이다. 이 후보와 관련된 형사사건 재판들의 잇따른 중단이 사법부가 민주당의 겁박에 굴복한 결과가 아니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정치가 재판의 영향을 받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그보다는 정치가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것의 해악이 훨씬 더 크다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12명은 내일 민주당이 예고한 이른바 ‘사법부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판 관련 청문회에 법관이 출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우리 헌법이 삼권분립을 규정한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하겠다. 입법부를 장악한 과반 다수당이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짓밟고 능멸하려 한다면 맞서는 것이 올바른 대응 아니겠는가.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절제와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층 이탈 등 민심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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