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이스탄불서 협상 재개 제안”
우크라 ‘30일 휴전’ 제안 뒤 발표
일각, 美경고 후 일방휴전 반복 탓
제재 회피 시간 끌기 전략 관측도
젤렌스키, 30일 휴전 先수용 압박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직접 휴전 회담을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의 제안은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조건 없는 30일 휴전’ 이후에 나온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새로운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로이터, 타스, 스푸트니크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레믈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협상을 재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와 진지한 협상을 할 것”이라며 “그 목적은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장기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협상이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2022년 결렬됐던 협상의 ‘재개’라고 표현했다. 협상의 장소를 이스탄불로 정한 것도 2022년 협상이 진행됐던 같은 장소에서 재개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러시아는 어떠한 전제 조건 없이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당시 협정 초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협정 초안에는 우크라이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으로부터 국제적 안보 보장을 받는 대가로 영구 중립을 수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푸틴 대통령이 ‘재개’라는 표현을 쓰면서 회담을 제안한 것은 전쟁이 장기화된 것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게 돌리는 것과 동시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 정상들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우방 정상들을 초청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승절 열병식을 벌이며 서방 국가의 압박에 보란 듯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열병식에는 북한군 대표단도 참석했다.

러시아의 이런 제안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마침내 전쟁 종식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전쟁을 진정으로 종식하는 첫 번째 단계는 휴전이다. 우리는 러시아가 12일부터 완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휴전을 확인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럽 4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정상과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조건 없는 30일간 휴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4개국 정상은 이날 키이우에서 ‘의지의 연합’ 회담을 가진 뒤 공동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과 함께, 정당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장을 만들기 위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30일 휴전에 합의할 것을 러시아에 촉구한다”고 재차 압박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조건 없는 30일간 휴전을 촉구하면서 러시아에 휴전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휴전 회담 제안이 러시아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화하는 시늉만 내면서 시간을 끄는 기만술일 뿐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이 나올 때마다 부활절 30시간 휴전, 전승절 72시간 휴전 등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트럼프 대통령이 사석에서 좌절감을 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푸틴 대통령과 협상하기가 특별히 어렵다면서 “그가 우크라이나의 ‘전부’(the whole thing)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