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를 시작한 어릴 때부터 수없이 라벨의 볼레로 음반을 들으며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수없이 많이 해봤지만 막상 직접하려니 너무 떨렸습니다.”

모든 드러머에게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꿈이자 도전이다. ‘딴-다다’가 반복되는 4분의 3박자 리듬으로 꿈결 속 속삭임 같은 서두부터 격정의 피날레까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한다. 15분 안팎의 연주시간 동안 쉬지 않고 4000번 이상 스네어 드럼을 두드려야 하는 꿈같은 도전을 지난해 송년연주회에서 펼친 윤재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차석단원은 지난 9일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설명했다.
“타악기가 지휘자보다 더 중요한 곡이 ‘볼레로’입니다. 그게 가장 매력적이죠. 협연 공연만큼 박수를 많이 받은 곡이라서 무섭지만 더 끌립니다.”
타악기 연주자로서 ‘볼레로’를 연주할 때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윤 차석은 “스네어 드럼이 오케스트라에서 굉장히 소리가 큰 악기인데 이 곡에선 매우 작게 연주해야 한다. 작고 정확한 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힘들다”며 “단신 농구선수가 덩크슛을 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단 한마디도 쉬지 않고 끝까지 템포와 볼레로라는 춤의 느낌을 유지하며 미묘하게 크레셴도를 이어가야 하죠.”
가장 어려운 대목을 묻자 뜻밖에도 곡 시작을 꼽았다. 아주 작은 소리이지만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는 긴장감이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가장 처음 시작할 때 ‘아주 여리게(피아니시모·pp)’ 연주는 지휘자 호흡 및 사인과 스트링(현악기)의 피치카토가 스네어 드럼의 가장 작은 음과 함께 연주되어야 하죠. 그리고 스틱의 높이는 0.5㎝ 정도만 움직여야 해서 숨도 못 쉬어요. 호흡도 크게 못 합니다. 그 1분30초 정도가 너무 떨립니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도 엄청난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가끔씩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으면 지휘자를 바라보는데 그때 지휘자가 도와줄 수 있다”며 “또 단원들의 미묘한 연주 차이를 귀 기울이며 연주하다 보면 어느새 즐기게 되고, 팀파니와 스트링이 함께 나올 때는 특히 반가움을 느낀다”고 했다.
타악기 연주자로서 무대에 오르기 전 필요한 조건과 마음가짐에 대해 윤 차석은 ‘교감’과 ‘신뢰’를 꼽았다.
“어릴 때는 스틱 나무의 종류, 무게, 길이, 팁의 모양부터 스네어 드럼의 종류, 스네어 세팅의 높이, 뮤트의 정도, 호흡, 오케스트라에서의 악기 위치, 메트로놈 연습 등등 너무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휘자와의 교감, 신뢰 또는 자신감 맨탈관리가 더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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