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회전익동. 서로 다른 헬기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엔지니어 2명이 도색이 이뤄지지 않은 헬기 외부를 면밀하게 점검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체 외부에 구조물들이 여러 개가 장착되어 있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낯선 모습을 동시에 지닌 이 헬기는 한국형 소해헬기다.

소해헬기는 해안과 가까운 바다에서 선박을 위협하는 기뢰를 탐지·식별·제거하는 해상 항공기로 기동성이 뛰어난 기뢰 대응 플랫폼이다.
KAI가 현재 제작 중인 소해헬기는 내년까지 군 당국에 납품할 시제기다. KAI는 지난 2022년 12월 방위사업청과 3477억원 규모의 소해헬기 체계개발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국산 소해헬기 시제기는 하늘로 날아오를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KAI 회전익사업관리실 박진석 상무는 이날 기자와 만나 “(소해헬기 시제기는) 현재 지상시험 진행 중”이라며 “이르면 다음달 중순쯤 첫 비행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비행에 필요한 요소는 이미 체계통합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시험비행을 통해 개발 성공이 입증되면, 한국은 미국·일본에 이은 세계 세 번째 소해헬기 개발국이 된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기뢰 위협 대응 능력이 더욱 높아지는 셈이다.

◆수리온→마린온→소해헬기로 발전
3면이 바다인 한국은 기뢰를 이용한 봉쇄에 취약하다. 유사시 기뢰가 주요 항구와 해군기지에 부설되면, 상선과 군함은 항구에 묶이게 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기뢰를 사용해서 한·미 연합군 상륙을 저지하는 것을 중시했고, 한국 해군도 소해함을 다수 운영하면서 기뢰전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미 해군 MH-53E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소해함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기뢰를 탐지·파괴하는 소해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해외에서 소해헬기를 구매하는 방안이 10여년 전에 제기됐으나 진전되지 못했다.

지지부진했던 소해헬기 사업은 지난 2021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국내 연구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쳐 지난 2022년 KAI가 체계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KAI가 개발하는 소해헬기는 국산 항공전자체계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제작된 마린온 상륙기동헬기에 소해장비를 탑재한 형태다. 미 해군이 MH-60 해상작전헬기에 소해장비를 장착한 것과 유사하다.
마린온은 수리온 기동헬기를 토대로 해상 운용에 필요한 기술을 적용했다. 마린온과 수리온의 흔적은 소해헬기 시제기에 뚜렷이 남아있었다.

이날 엔지니어들이 점검하던 시제기 조종석 문 아래에는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있었다. 해상 불시착 시 기체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비상부주장치였다. KAI 관계자는 “마린온에도 있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동체 위쪽의 엔진 배기구에는 검은색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적외선 감쇄기였다. 기뢰 탐색과 파괴 작업을 위해선 저공비행을 해야 하는데, 적군의 지대공미사일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적외선 방출을 억제해서 이같은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레이더경보장치, 레이저경보장치 등이 동체에 장착되어 기체의 생존성을 높였다. 기체 전면엔 전자광학·적외선 카메라(EO/IR)를 장착해 조종사의 전방 주시를 돕는다.
소해헬기는 조종사 2명과 장비 운용요원 1명이 탑승한다. 운용요원은 동체 중앙부 병력 탑승 공간에 설치된 임무 제어 콘솔(MCC)을 다룬다.
조종석 바로 뒤에 있는 MCC는 소해헬기가 탑재하는 레이저 기뢰 탐색 장비(ALMDS), 자율 수중 기뢰 탐색체(AUV), 무인 기뢰 처리 장비(AMNS) 운용을 통제한다.
레이저 기뢰 탐색 장비는 얕은 수심에 있는 기뢰를 찾는다. 소해헬기 시제기 중앙동체의 한쪽 옆에는 지지대와 연결된 원통형 물체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것이 레이저 기뢰 탐색 장비다.

상당한 무게를 지닌 이 장비를 탑재하고자 KAI는 헬기 프레임을 강화하고 기체에 지지대를 추가했다. 외형적으로 소해헬기가 다른 수리온 계열과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식별 포인트다.
자율 수중 기뢰 탐색체는 깊은 수심에서 기뢰를 수색한다. 탐지된 기뢰는 운용요원이 식별 후 무인 기뢰 처리 장비를 이용해 파괴한다. 이 장비들은 헬기 중앙부의 병력 탑승 공간에 탑재되며, 작전 과정에서 윈치 등의 진수 시스템을 사용해 장비를 바다로 내려보낸다.
소해 장비들은 해외 업체가 제작한 것을 사용한다. KAI 회전익사업관리실 박진석 상무는 “전 세계적으로도 이 장비들을 가진 나라가 몇 없다”고 설명했다.
해군 소해함에서 운용하고 자율 수중 기뢰 탐색체가 국내 개발 중이지만, 크기와 중량 등의 문제로 항공기 탑재는 어렵다.
방위사업청 등에선 이를 경량화·소형화해 항공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뢰전 양상 바꿀 핵심 전력
소해헬기 시제기는 1대를 제작한다. KF-21(6대) 전투기나 소형무장헬기(3대)보단 적은 수량이다.
박 상무는 “시제기 수량은 개발과 시험 범위와 관계가 있다”며 “KF-21이나 LAH처럼 신규 개발 기종은 시험할 것이 많지만, 소해헬기는 수리온·마린온의 특성을 지녀 비행시험 소요가 생각보다 많진 않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부터 지상시험이 진행된 소해헬기 시제기는 다음달 첫 비행을 거쳐 내년 7월까지 지상 및 비행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다양한 환경에서의 비행 능력과 소해장비 체계통합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소해헬기는 기본적으로 지상 기지에서 운용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다만 해군이 운용하는 항공기이므로 함상 이착륙 및 계류 능력도 확보한다. 이를 위해 해군 대형 상륙함 마라도함과 기뢰부설함 원산함을 이용해서 운용능력평가를 받게 된다.
마라도함과 원산함은 다른 함정보다 비행갑판이 상대적으로 넓어서 체계개발 단계에서의 비행시험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소해헬기 사업을 통해 해군과 처음으로 협업하게 된 KAI로서는 낯선 경험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해군 함정들이 작전과 훈련, 정비 등으로 매우 바쁘다는 점이다.
박 상무는 “마라도함과 원산함을 1~2주일씩 몇 번에 걸쳐서 불러와야 하는데, 해당 함정들은 해군의 전략자산인데다 작전 등으로 차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원활한 해상 시험을 위해 KAI는 경남 진주시 소재 회전익비행센터에 있는 함상 이착륙을 모의하는 시설에서 연습을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해헬기의 토대인 수리온의 특성은 비행과정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4축 자동비행조종장치(AFCS)가 대표적이다.
4축 자동비행조종장치는 조종사가 특정 속도와 고도를 입력하면 헬기가 이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장치다.

소해헬기는 특정 해역을 낮은 고도로 지그재그로 비행하면서 기뢰를 탐색한다. 소해 장비를 내릴 때는 제자리 비행을 해야 한다. 의심스런 지점을 탐색하려면 제자리 선회도 필수다.
수리온에서 쓰인 4축 자동비행조종장치는 소해헬기가 제자리 비행 및 선회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면서 소해 장비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조종사의 피로를 덜어주어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긴장을 유지한 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손과 발로만 헬기를 모는 것은 베테랑 조종사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바다 위에서 저공 비행하며 기뢰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소해헬기 조종사로서는 훨씬 힘든 비행이다.
4축 자동비행조종장치는 조종사가 직면하는 피로와 긴장감을 덜어주어 임무에 집중할 정신적 여유를 제공해줄 수 있다. 수리온과 소형무장헬기에서 검증된 체계로서 소해헬기의 비행 능력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소해헬기 체계개발은 내년 7월까지 평가를 완료할 계획이다. 자율 수중 기뢰 탐색체의 해상 진수와 수중 통신 등의 검증은 시험 최종 단계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평가가 끝나면 같은해 11월까지 전투용 적합 판정 등을 실시해서 개발 사업을 마무리한다. 이후 양산을 거쳐 2030년까지 해군에 소해헬기대대가 창설된다.
소해헬기가 전력화되면 해군의 기뢰전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미군 소해헬기 지원이 없을 경우엔 소해함만으로 기뢰제거 작전을 펼쳐야 했다.
소해함은 기뢰제거에 적합한 함정이다. 하지만 바다 위를 항해하는 소해함은 유사시 신속하게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에서 활동하는 소해함이 긴급하게 서해로 전개하려면, 남해를 거쳐야 하므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반면 소해헬기는 몇 시간 만에 작전 해역에 도달할 수 있다. 소해헬기는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를 탐색할 수 있는 장비를 갖고 있다.
소해헬기가 소해함보다 앞서서 비행하며 기뢰를 탐지해 위치를 소해함에 알려주면, 소해함이나 다른 수상함에 기뢰의 위치를 알려서 파괴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이는 해군 함대의 작전 유연성과 기동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2030년대 소해헬기가 전력화되면, 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입체적인 기뢰작전 수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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