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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N번방 방지법’ 시행 5년째, ‘수법’은 진화했고 ‘대응’은 미약했다

입력 : 2025-05-08 17:39:20 수정 : 2025-05-09 09: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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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시행 5년째, 수법은 교활하게 진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시청 사건 年 483건꼴
2024년 464건 중 59%는 제작·배포까지
가해자 80% 집유, 경합범죄인데도 평균 형량 2년

정작 텔레그램 등 해외 사업자는 법 적용 제외
방통위 “문제의식 느끼고 계속 협조 구하고 있어”

‘N번방’, ‘박사방’ 등 일련의 텔레그램 성착취 사태가 발생한 뒤 2020년 5월부터 순차적으로 일부 법률 개정안을 묶은 일명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다. 법 시행 5년을 맞았지만 디지털 성착취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협박에 취약한 아동과 청소년을 노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성착취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됐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다.

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사이버성폭력 범죄집단 자칭 '자경단'의 총책 김녹완씨가 지난 1월 24일 서울 성동구 성동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텔레그램상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이어졌다. 성착취 범죄조직 ‘자경단’ 총책 김녹완(33·활동명 목사)과 텔레그램 성착취 계정 ‘판도라’를 운영한 17살 고등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범행에 가담하게 하고,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으로 일인다역을 하며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지배했다. 자경단 피해자 수는 N번방 사태 2배에 달했다. 이 두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텔레그램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도 피해자 신고로 시작됐다.

 

8일 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LBox)를 통해 지난해 1년 동안 전국 1심 법원이 선고한 ‘청소년성보호법상 성착취물 소지 등’ 사건 464건을 분석했다. N번방 방지법 시행으로 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며 처벌할 수 있게 된 ‘단순 시청’도 포함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나 시청에 그친 사건은 41.2%로 절반도 안 됐다. 나머지 58.8%는 ‘성착취물 제작·배포 등’ 2개 이상의 죄명으로 기소된 경합범죄 사건이었다. 소지하거나 시청한 성착취물을 재유포하거나 새로운 착취물을 제작하기도 했다는 것인데,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눈덩이처럼 쉽게 불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 사건은 징역형을 선고받더라도 10건 중 8건꼴(79.4%)로 집행유예가 이뤄졌다. 또 해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관련 사건이 최소 수백건씩 벌어지고 있지만, 성착취물이 주로 유통되는 해외 플랫폼의 사업자에겐 강제력 있는 의무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N번방 방지법 취지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최근 1심 법원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등 범죄에 대해 선고한 판결은 연간 평균 483건이다. 2020년 119건, 2021년 799건, 2022년 517건, 2023년 516건, 2024년 464건으로 5년간 2415건에 달했다. 이는 제작·배포만 저지른 사건은 제외한 수치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아동·청소년이나 이들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한 영상물 등을 말한다. 

N번방 방지법으로 법령상으론 형량이 무거워졌다지만 판결문 분석 결과 평균 형량은 2년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경합범죄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형량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또는 배포한 자에게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소지 또는 시청한 자에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고유예 역시 23건으로 적잖았고 형 면제 1건, 벌금형 1건도 있었다. 선고유예와 형 면제는 모두 죄는 인정되지만 전자는 형을 선고하지 않고, 후자는 선고는 하되 형을 집행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

 

이들 사건에서 성착취물 유통 경로는 주로 해외 플랫폼인 엑스(X·옛 트위터)나 텔레그램이었다.

 

N번방 방지법으로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은 플랫폼 등을 운영하는 통신사업자에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 영상물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정보 게재를 제한하는 등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의도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매출액 3%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2020년 5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할 의무 등을 부과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해외 플랫폼이 이 법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N번방 방지법이 시행 5주년이 됐지만 한계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8월 말부터 4월까지 진행한 사이버 성폭력 범죄 단속으로 적발된 불법 영상물은 8만84건에 달했는데, 대부분 해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됐다. 이 중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3만3787건에 달했다.

 

관할 정부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텔레그램이 청소년보호책임자를 지정하는 등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불법 영상물 유통에 대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자율 규제로 강제성은 없다.

 

방법은 없을까.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성착취 사태로 촉발된 법인데 정작 텔레그램이 적용받지 않는다는 지적은 N번방 방지법 논의 당시부터 제기됐다.

경기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N번방 방지법 법안 심사가 이뤄진 2020년 5월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은 개인정보 침해 사고 발생 시 규제 집행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국내 대리인 제도’를 통해 불법물 유통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대리인 제도 역시 전년도 매출이 100억원 이상인 기업이 대상인데, 해외 기업의 경우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이 있었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계속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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