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은 한때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의 마디가 된다. 그런데 어떤 계절의 기록은 다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것만 같기도 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동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DMZ Docs x SAC 현실의 박물관: 1960~70년대 다큐멘터리의 혁신들’에서 놀랍도록 현재와 닮은 과거의 기록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크리스 마커와 피에르 롬의 ‘아름다운 5월’은 1962년 5월의 파리를 속속들이 카메라로 비추며 파리 시민과의 인터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크리스 마커는 사진가로도 알려진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영화감독이고 피에르 롬은 촬영감독이다. ‘아름다운 5월’에 담긴 정신은 크리스 마커를, 필름에 담긴 시민의 얼굴과 삶의 풍경에 가까이 다가서는 카메라는 피에르 롬을 따른다.

‘행복한 다수에게’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100여명의 파리 시민을 인터뷰하고 총 55시간에 달하는 필름을 165분으로 편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5월이 왔건만 날씨가 아직도 춥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때로 아름다운 5월이라는 말에서 풍겨오는 시적 정서에 걸맞게, 때로는 그 서정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듯 당시의 어지럽고 혼란한 파리가 필름에 기록된다.
알제리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 촬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전쟁 이후에 프랑스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주요 시사 사건들이 파리 시민들이 보이는 관심사에서 파편적으로 감지된다. 프랑스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세력과 알제리 독립을 둘러싸고 고조되는 갈등, 테러 위협, 장군의 반란과 재판, 평범한 파리 시민과 평범하게 삶을 살고 싶은 알제리 청년의 인터뷰는 2025년 우리에게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평범한 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사소한 걱정거리를 말할 때다. 파리 인구 밀집으로 인해 거주 문제를 걱정하는 젊은 연인이나 돈도, 건강도, 가족도 중요하지만 생계로 매일이 고되다는 거리의 상인은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이곳으로 도착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포착한다는 ‘시네마 베리테’와 다르게 ‘아름다운 5월’의 인터뷰어는 방향과 시선을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질문을 받은 어떤 이는 진지한 눈빛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시민들의 논쟁에 카메라가 먼저 시선을 돌릴 때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카메라 앞을 거쳐 간 뒤 ‘아름다운 5월’은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이름을 적은 기록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이름 없이 기록된 사람들 때문에 과거에서 지금이 비쳐 보이는 기시감은 더 짙어진다. 과거와 현재가 잘라 나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은 다르지 않다. 매해 버드나무의 흰 솜털 씨앗이 거리로 불어오고 나서야 5월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알아챈다. 어딘가의 모두에게 5월은 어떤 풍경으로 남게 될까.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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