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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유채꽃과 기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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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08 23:28:14 수정 : 2025-05-08 23: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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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작물 수확 줄어
식물성 기름 인상률 가팔라
무역 분쟁·독성물질 주장 등
국제사회 기름논쟁 확산세

지금은 대부분 농작물을 키우는 밭입니다. 유채 농사를 짓죠. 나는 말한다. (중략)

“그렇군요. 운전해 오면서 봤습니다. 유채가 그렇게 키가 큰 줄 몰랐습니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나는 말한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농부들이 땅을 경작하던 때는요. 이제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정부가 소유하고 있죠. 기업은 새로운 종을 키우더라고요. 교배종인데, 예전 것보다 훨씬 크고 꽃도 더 진한 노란색이에요. 물도 거의 필요 없대요. 이런 식물은 긴 가뭄도 견뎌낼 테죠. 더 빨리 성장하기도 하고요. 제가 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지만, 뭐 어쩌겠어요.(이언 리드 ‘FOE 적’)

캐나다 작가 이언 리드의 소설 ‘적’은 광활한 유채꽃밭이 펼쳐진 인적 없는 마을의 외딴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판타지 스릴러다. 늘 똑같은 하루, 고요한 나의 집, 안온한 일상은 확장, 확산, 정복을 섬기는 이방인의 낯선 질서에 서서히 잠식된다. 주인공의 불안감은, 너무 밝아 거의 형광색처럼 빛나는 유채꽃의 섬뜩한 아름다움과 맞물려 점점 증폭된다.

소설이 어디를 배경으로 하는지 지명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작가의 국적을 고려하면 캐나다 대초원의 어디쯤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1970년대 유해 지방산을 줄인 유채유를 개발해 ‘캐나다산 저에루크산 오일(Canadian Oil, Low Erucic Acid)’을 내놨는데 그게 카놀라유다. 카놀라유는 팜유, 콩기름에 이어 세계 3대 식물성 기름으로, 캐나다는 본고장답게 세계 최대 수출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굽고, 볶고, 튀기는 수만 가지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이 식물성 기름을 둘러싸고 현재 국제사회에선 조용한 ‘기름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가 고물가에 신음하고 있지만 식료품, 그중에서도 식물성 기름의 인상률이 눈에 띈다. 5년 전보다 카놀라유는 47%, 콩기름은 58%, 팜유는 90%, 올리브유는 100%가 뛰었다. 기후변화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기후는 작물 공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 최대 올리브 생산지인 지중해 국가는 2020년 이후 폭염과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올리브 수확량이 30% 줄었다. 기후변화는 작물 수요에도 영향을 준다.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디젤 수요가 늘면서 사람 입 대신 자동차 주유구로 들어가는 식물성 기름도 많아졌다. 전 세계 식물성 기름의 16%가 바이오디젤 원료로 쓰인다.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기름, 동물성 기름, 폐식용유 등 다양한 원료로 만들 수 있는데 미국과 유럽에선 식물성 기름 사용 비중이 70%가 넘는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도 기름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중국은 지난 3월 캐나다산 카놀라유와 유박에 100%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지난해 캐나다가 미국을 따라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보복인 동시에 “미국 믿고 중국에 맞서지 말라”는 경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캐나다산 카놀라유에 25% 관세를 발표하려다 취소했다. 그 대신 미국에선 ‘기름 색깔론’이 한창이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이 “카놀라유와 콩기름은 독성물질”이라며 “그 대신 소기름(탤로)으로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자(MAHA. Make America Healthy Again)”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물론 그가 오랫동안 밀고 있는 백신 회의론과 마찬가지로 이번 ‘카놀라유 독성물질’ 주장도 탄탄한 의학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기후운동에 대한 반감이 먹거리로 옮겨붙으며 ‘식물성 먹거리=기후운동=진보’의 반작용으로 보수 진영 사이에서 ‘반 카놀라, 찬 탤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습관적이고 편안한 활동은 감옥 중에서도 최악의 감옥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죠. 현상 유지가 현대 인류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립된 시골 농가에 불쑥 나타난 이방인은 아우터모어라는 기관에 소속돼 있다. ‘더 멀리, 더 뛰어나게’라는 슬로건 아래 무한한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모빌리티?우주개발 기관이다. 끝없는 팽창을 강요하고 합리화하는 세계 질서가, 주인공의 흔들리는 일상처럼 현실 속 우리 식탁까지 침투하며 조용한 기름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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