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상은 1990년대까지 스포츠기자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지금이야 김동성, 안현수, 김연아,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최민정 등 올림픽을 제패한 스타들이 이어 나오며 인기가 높아졌지만 과거에는 야구, 축구 등 인기종목에 밀려 신입 기자들이 주로 떠맡는 구조였다.
어린 시절 한강과 창경원(지금의 창경궁)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던 친숙함에, 나는 현역 기자 시절 동계스포츠 종목을 통째로 맡았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얼음판 뉴스를 담당했다. 아마도 최장수 빙상담당 기자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회장을 선임하지 못해 관리단체가 되었을 때는 관리위원을 지냈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빙상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지난 4월23일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치러진 이수경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취임식에 초대를 받았다. 그날 행사는 내가 그동안 지켜보았던 체육계의 그 어떤 행사보다 화려하고 뜨거웠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김재열 국제빙상연맹(ISU) 회장 등 빙상계 주요 인사, 선수 및 지도자 400여명이 참석한 대축제였다.
이수경 회장은 내가 ‘언젠가는 빙판의 리더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빙상인이다. 학창시절에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고, 서울대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엘리트다. 선수 은퇴 후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피겨 국제심판,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그리고 ISU 데이터 오퍼레이터로 활약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 전문기업인 삼보모터스 사장을 맡고 있다. 스포츠계가 그런 인재를 내버려둘 리가 없으니, 그는 결국 젊은 피가 대거 수혈된 이번 대한체육회 회장단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고민이 있었고 결심이 쉽지 않았다. 사랑하는 빙상의 세계를 지키고 변화를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소감을 말하면서 “얼음 위에서 웃고 울던 시간이 저를 만들었고 이 자리로 이끌었다. 대한민국 빙상이 세계 정상을 지켜온 만큼 이를 계속 이어가고, 함께 즐기는 빙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43) 대한체육회장은 축사에서 “이수경 회장과 일을 하면서 ‘강렬함’을 많이 느낀다. 두 아이의 엄마, 기업의 오너이면서 열정이 과하게 넘치는 친구였다”고 했다. 이어 “‘맡을 분이 맡았다’란 생각이다. 최초의 여성 회장, 최초의 경기인 출신 회장, 역대 최연소 회장이다”라며 큰 기대감을 표출했다.
현역 국가대표로서 참석한 최고참 이승훈은 “선배님이 새 회장님으로 오셨으니 다가오는 올림픽에서 신나고 멋지게 달려 보겠다”고 했다. 운동선수는 신이 나면 일을 낸다. 빙상선수들 신이 났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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