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50% 고율 관세로 세수 충당
“당시 美 신생국… 정당화 명분 있었다”
1930년대 보호무역론자 후버 前 대통령
평균 관세 40.1%서 59.1%로 19%P 올려
각국 보복관세… 2차 세계대전으로 번져
2차대전 이후 자유무역주의 신뢰 향상
전문가 “트럼프 조치로 다자주의 종식
재편된 경제 질서 당분간 유지” 전망
1월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대통령 선거운동 때부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마가(MAGA)’를 주창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예고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인상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에는 외국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에도 관세를 100% 부과하겠다고 발언해 문화·예술 분야까지 관세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무역적자 축소와 제조업 부흥을 기치로 관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형국이다.
세계무역의 시초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아라비아 남부와 금속·곡물을 대상으로 장거리 교역이 있었고, 고고학자들은 그에 앞선 선사시대에도 교역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현대적인 개념의 무역이 등장한 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과거에도 현재처럼 관세를 무자비하게 높인 전례가 있다. 그러나 역시나, 해당 정책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 지위가 다르고, 세계경제 상황 역시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다자주의는 끝났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 후 재편된 경제 질서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전망했다. 일반적인 교역과 관세 정책 역사는 주로 ‘무역의 세계사’(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박홍경 옮김) 내용을 참고했다.
◆‘관세왕’ 매킨리의 산업 보호론
트럼프 대통령이 전부터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언급해온 이가 있다. 미국 하원의원에서 제25대 대통령이 된 윌리엄 매킨리는 관세를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국을 부유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부(富)의 샘처럼 여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때 “매킨리 전 대통령은 관세와 재능을 통해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파나마운하를 비롯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인) 테디 루스벨트에게 그 돈을 줬다”고 매킨리 전 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웠다. 3월4일 첫 의회 연설에서도 매킨리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알래스카 최고봉 ‘디날리’의 명칭을 ‘매킨리 산’으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매킨리 산 이름을 알래스카 원주민 언어로 ‘신성함’을 뜻하는 디날리로 바꾸었는데 이를 되돌리겠단 것이다.
매킨리 전 대통령의 별칭은 ‘관세왕’이다. 1896년 취임한 매킨리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평균 50%에 달하는 높은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1890년 하원의원 시절 ‘매킨리 관세법’을 주도해 평균 관세율을 높인 이후 대통령이 돼서는 ‘딩글리 관세법’에 서명해 관세율을 더 높였다.

그러나 당시 경제적 상황을 보면 왜 매킨리 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택했는지 일부 이해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1893년 경제침체를 겪다가 회복 중이었다. 철도회사, 은행 등 여러 기업이 도산했고 정부는 일자리 창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방안을 강구했다. 이 시기 미국 정부가 관세로 벌어들이던 세수는 1896년 기준 약 1억6000만달러로, 전체 세입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소득세, 법인세와 같이 현대 정부에 기본으로 여겨지는 세금이 없던 시절에 관세와 알코올, 담배 등에 개별적으로 매기는 내국세(우리나라의 개별소비세)로 세수 대부분을 채웠다. 이후 미국은 1913년 제16차 수정헌법이 통과되면서 소득세, 법인세 등을 만들고 현재와 같은 복합적인 세금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때 미국은 신생국이고 영국에 비해 산업이 훨씬 초보 단계라 산업 보호론을 앞세워 고율 관세를 정당화할 명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산업 보호를 주창한 매킨리 전 대통령도 1901년 피격됐다. 그에게 총을 겨눈 무정부주의자 청년은 범행 동기로 빈부 격차, 노동자 억압, 자본가 중심 정책을 주장했다.

◆1930년대 무역전쟁, 그 끝은 2차대전
1929년 10월24일, 뉴욕증시가 폭락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찾아온다. 이른바 ‘대공황’이다. 전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후유증에서 회복 중이었다. 유럽 농업이 차츰 회복하자 미국산 농산물 수출이 줄고 곡물 가격이 하락했다. 미국 농부들 불만이 커졌고 1928년 대통령으로 보호무역론자이던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가 당선됐다. 후버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재화만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였다. 그의 머릿속에 농민을 구제할 방법으로 처음 떠오른 방법도 관세 인상이었다.
1930년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 두 공화당 의원 주도로 농업 보호 취지의 관세 법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법 과정에서 제조업, 광업 등 분야별 이익집단 요구까지 반영되며 이 법은 광범위한 고율 관세법으로 탄생했는데 바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다.
미국 상무부 소속 인구조사국이 발간한 ‘미국 식민지 시대부터 1957년까지의 역사 통계’ 문서에 따르면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적용하는 평균 관세는 기존 40.1%에서 1930년 59.1%까지 19%포인트 올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후 미국이 각 나라에 문제 제기하고 있는 ‘비관세 장벽’도 후버 전 대통령은 높이 세웠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 스페인의 대미 수출은 절반가량이 코르크였다. 미국은 코르크 수입 관세를 올린 데다 스페인에 원산지까지 표기하라고 요구했는데, 이 요구에 따르려면 스페인은 코르크값보다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런 일이 스위스, 독일, 영국 등에서 반복됐다. 3년 만인 1933년, 스페인 과일, 캐나다 목재, 아르헨티나 소고기, 스위스 시계, 미국 자동차가 전 세계 부두에서 자취를 감췄다.

물론 다른 나라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독일은 미국 자동차와 라디오에 평균 50% 이상, 이탈리아는 100% 가까이 미국 차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영국도 대다수 수입품에 10% 관세를 물리기로 했고 전 세계 교역량은 1930∼1933년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 급감했다고 추정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스무트·홀리법 설명에 따르면 1929년에 비해 1934년 전 세계 교역은 66% 급감했고 1930년 52억달러이던 미국 수출액은 1933년 17억달러로 줄었다.
관세 전쟁은 국가경제만 악화시킨 것이라 아니라 국가 간 적대감을 키웠고, 대중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대공황 상태에서 보호무역주의로 촉발된 자국 중심주의는 결국 평화적 방법이 아닌 물리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번졌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트럼피즘은 지속될 것”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서둘러 무역을 다시 개방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주의에 신뢰가 높아지며 1950년대부터 전 세계 교역량이 폭증하고 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급격히 커졌다. 관세 인하로 수입재 가격이 하락하고 전 세계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출주도형 성장국이 나타났다.
전후 100년 가까이 믿어온 다자주의는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조치로 이미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이번 트럼프 행정부 조치로 다자주의는 이제 종식됐음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 다른 나라의 관세 인상을 국제적으로 비난하고 다자주의로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별로 의미가 없어졌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적어도 10년간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며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진 무역 정책을 언급했다. 트럼피즘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당선부터 이후 생겨난 정치 현상을 통칭하는 단어다. 최 교수는 “다른 정치인이 트럼피즘을 완전히 버리고 과거로 복귀하기엔 이미 이익을 얻었던 집단이 그 이익을 빼앗기는 걸로 느끼고 집권 세력을 공격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인기를 모으는 데 유용한 트럼피즘을 포기하고 이를 감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이어 “장기적인 부작용과 비판이 쌓였을 때 트럼피즘이 무너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동력을 잃지 않게 통화 정책 등으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인 허정 서강대 교수(경제학)도 “자유무역체제로 다시 돌아오긴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허 교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말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창설하고 바이든 전 대통령이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고관세를 잇는 등 민주당 정권에서도 미국이 해오던 통상질서에 변화가 있었다”며 “통상 조치는 트럼프 개인의, 행정부 차원의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미국이 가진 큰 변화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미국 정책을 주어진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해갈 수밖에 없는 나라”라며 “얼마 전 ‘2+2’ 통상 협의로 압축된 4가지 의제 결과물이 향후 30년의 한·미 경제동맹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에 국익을 우선하는 태도와 협력도 당부했다. 그는 “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변수가 많지만 국익을 최우선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며 “다른 나라에서 통상정책이 거의 독립적으로 추진되듯이, 우리나라도 통상정책의 원칙을 세워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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