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감염 모두 인간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 바깥에 있던 바이러스가 내 안으로 섞여 들어오며 신체에 이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나듯, 사랑은 나 아닌 존재에 물들며 나와 타자 사이 경계가 흐트러지는 일이다. 7일 개봉하는 영화 ‘바이러스’(감독 강이관)는 감염이라는 은유로 사랑의 속성을 그리는 수작이다.

연애에 기대나 희망을 품지 않는 번역가 ‘택선’(배두나)은 떠밀리듯 나간 소개팅에서 만난 백신 연구원 ‘수필’(손석구)과 엉망진창 저녁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택선의 세상이 갑자기 핑크빛으로 물든다. 괜스레 웃음이 나고, 매일같이 울리는 초등학교 동창인 외제차 딜러 ‘연우’(장기하)의 영업용 단체문자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톡소 바이러스’에 걸린 수필과 접촉한 탓에 택선까지 감염된 것.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활력 넘치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증상을 보인다. 그러고는 24시간 이내 사망에 이른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은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이균’(김윤석) 박사와 조우해 예기치 못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많은 이가 강렬하게 감염에 ‘휘말리는’ 감각을 경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관객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강이관 감독이 영화의 원작 소설 ‘청춘극한기’(2010, 이지민)를 보고 시나리오를 완성한 건 2019년 3월쯤이다. 그해 하반기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하던 중 코로나19가 닥쳤다. 이 때문에 개봉이 몇 년이나 늦어진 건 코로나19가 몰고온 불행이지만, 그사이 PCR검사와 방호복, ‘슈퍼 항체’ 등 영화 속 요소들을 모두가 익히 알게됐기에 영화를 한층 몰입해 볼 수 있게 된 건 전화위복이다. 모든 타인을 잠재적 보균자로 간주하는 접촉 기피증과 결벽증이 가득했던 그때, 사랑은 적고 혐오는 넘쳤던 그때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지나간 옛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경쾌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배우의 공을 언급할 때 맨 먼저 주연 배우인 배두나·김윤석의 눈부신 호연을 꼽아야겠지만, 그보다 더 감탄스러운 점은 엄청난 밀도를 자랑하는 전체 출연진의 호흡이다. 손석구·장기하·문성근·김희원·오현경·민진웅·염혜란 등 조연진은 물론 단 한 시퀀스에 등장하지만 절대 잊히지 않을 연기를 펼친 최형인까지 모든 배우가 기막힌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비중 높은 조연인 가수 장기하와 특별출연으로 등장하는 가수 카더가든의 연기 역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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