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선고했다. 대법관 10 대 2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낸 것이 핵심이다. 비록 파기환송 판결이긴 하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유죄’로 못박은 이상 하급심 법원도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파기환송심 재판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이 후보는 결국 유죄 선고를 받을 것이다. 다만 판결 확정 시점이 언제가 될지, 그 점만이 남은 궁금증이라고 하겠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다수의견에 가담한 대법관 10명은 이 후보가 선거법상 금지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 분명하다고 봤다. 공교롭게도 10명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이들이다. 반면 대법관 2명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이 후보의 발언이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이 소수의견을 낸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법원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임명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의견이 엇갈렸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되었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2명뿐인 것은 아니다. 노태악 대법관(2020년 3월 취임)과 천대엽 대법관(2021년 5월 취임)이 더 있다. 그런데 노 대법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후보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을 때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들어 이해 충돌 우려가 있다며 스스로 심리에서 빠졌다. 천 대법관의 경우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고 있다. 행정처장은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만큼 전원합의체 구성원이 아니다. 만약 윤석열정부 시절 임명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 행정처장을 맡고 있었다면 노, 천 두 대법관도 심리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죄 10 대 무죄 2’의 구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2018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원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망명 제한 조치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연방지방법원 법관에 의해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바마 판사’를 겨냥한 트럼프의 날선 비난에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우리 법원에 오바마 판사, 트럼프 판사, (조지 W) 부시 판사, (빌) 클린턴 판사는 없다”며 “법 앞의 평등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법관들만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임명권자가 누구이든 판사는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문재인 판사’, ‘윤석열 판사’는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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