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완전한 피아니스트’라는 심사위원 극찬을 받으며 우승한 브루스 리우가 5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차이콥스키의 ‘사계’ 전곡을 1·2부로 나누어 연주하고, 라흐마니노프 편곡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제4번’, 그리고 ‘전쟁 소나타’로 불리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중국계 캐나다인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는 2021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8회 쇼팽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 심사위원은 “완벽한 브릴란테, 페달 없이도 부드러운 음색, 훌륭한 루바토와 다이내믹 컨트롤, 그리고 형식을 창조하는 능력까지 갖췄다”고 평가했을 정도. 우리나라와는 어린 시절 한국계 피아니스트 송원호로부터 처음 피아노를 배운 인연도 있다.
“음악을 대하는 나의 접근 방식은 변화무쌍한 바다와 같다”며 즉흥성과 유연함을 강조하는 리우는 피아노를 직업이 아닌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예술가다. 리우는 “한국 관객은 연주자와 호흡하며 음악에 깊이 공감해주는 특별한 존재”라며 이번 공연 역시 그런 따뜻한 에너지 속에서 관객과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음은 브루스 리우와 일문일답.
-이번 리사이틀에서 차이콥스키, 스크랴빈,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다. 쇼팽콩쿠르 우승자로서 러시아 레퍼토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해석의 차별점이 있는가.
“러시아 작곡가들은 깊은 감성과 극적인 강렬함을 지닌 음악으로 유명하다. 풍부한 선율, 복잡한 화성과 리듬과도 결합한다. 작품 속에서 거대한 스케일과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러시아의 방대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도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러시아의 각 작곡가가 지닌 독창적인 개성을 탐구할 수 있어 무척이나 기대된다. 예를 들어,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주로 매우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며, 때로는 나약함과 갈망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반면,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는 보다 현대적인 감각을 더 한 강렬한 대비와 대담한 표현을 드러낸다. 이 작곡가들에 있어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을 포착한다는 데 있다. 광활한 선율이든, 격렬한 감정이든, 복잡한 리듬이든, 그들의 음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러시아의 정신을 담아낸다. 전반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아치를 그리듯 구성하고자 했다. 러시아인의 영혼이 겪는 감정의 사계절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겠다.

-최근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발매했고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전곡을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연주한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가. 가장 애착이 있는 달은 무엇인가.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연주하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번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연주하는 것은, 관객들이 이 곡의 감정적인 여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계’는 단순히 12곡으로 구성된 사이클이 아니라, 각 달마다 고유한 분위기와 질감을 보여주는, 시간의 흐름을 담은 작품이다.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연주하는 것은 각각의 달이 충분히 호흡할 수 있게 하고,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만들어낸 계절의 대비와 그 이미지에 관객들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서다. 가장 좋아하는 달을 꼽자면, 11월이다. 예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앙코르곡 중 하나였고, 멜랑콜리의 감정이 주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 곡이 주는 반짝임과 시적인 서정성을 정말 좋아한다.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그만의 매력과 도전을 담고 있다. 차이콥스키가 그려낸,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는 매달의 정서를 사랑한다. 이 곡을 연주할 땐 늘 새로운 발견이 함께 온다.

-쇼팽 콩쿠르 당시 여러 피아노 중에서 이탈리아 파지올리를 골라 연주했다. 평소 연주에서 피아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피아노 브랜드마다 개성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 개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파지올리 피아노를 처음 접했을 때, 그 피아노는 저에게 일종의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었다. 쇼팽콩쿠르 때 파지올리를 쳐봤는데, 굉장히 풍부하고 명확한 다이내믹을 가진 사운드를 낼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쇼팽콩쿠르에서는 파지올리의 가벼운 터치와 폭넓은 표현력을 가진 음색이 쇼팽 시대의 플레옐 피아노(쇼팽이 애호했던 프랑스 피아노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여서 더욱 좋았다. 아주 섬세한 피아니시모부터 강렬한 포르테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안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사운드도 매우 매력적이다. 물론 현재는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스타인웨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인웨이의 경우, 늘 신뢰가 가고 풍부하고도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주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매번 깊이 파고들게 하고, 각 음이 지닌 의미에 다가가게 한다.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악기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악몽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데, 저처럼 즉흥적인 사람에게는 그런 예측 불가능성이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한국계 피아니스트 송원호( Wonny Song)에게 피아노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맞는가. 당시 어떤 학생으로 기억하는가.
“그렇다. 정말 어렸을 때였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되돌아보면 매우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지만, 인내심이 아주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를 탐험하는 걸 좋아해서, 오랫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런 제 호기심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가르쳐 주셨다. 음악이 '엄격하고 무거운 숙제'가 아니라, '신나고 재미있는 것'으로 느껴지게 해주었다. 그때 남은 음악에 대한 '자유로움'과 '기쁨'의 감각은 지금까지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제가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 즉 음악은 압박감이 아닌 영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제 철학을 만들어 준 중요한 시간이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공연 중이다. 각국 청중의 차이점이 있을 텐데 한국 청중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관객은 정말 열정적이다. 아주 깊은 감정적인 연결이 느껴진다. 한국은 음악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주에 담긴 예술성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클래식 음악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친밀하게도 느껴지지만 어마어마한 열정과 에너지가 특히 상징적인 것 같다. 단순히 예의상 박수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존중을 표현하는 박수라는 게 느껴진다. 공연 내내 저와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을 주고, 그 공간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깊은 연결감을 심어주는 등 정말 따뜻하고, 지지해주는 에너지가 대단한 관객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모든 경험이 상호 존중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진다. 이번에도 한국 관객분들과 그런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할 그 저녁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하나하나의 음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음악을 통해 우리가 하나 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모두 공연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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