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무고한 피해자들…해고 등 불이익 받아
음주운전 의심자 추격하다 운전자 사망 사례도
“즐기는 이들도 사회적 책임…엄정 대응해야”
최근 사법부와 수사기관에서 유튜버들의 ‘사적 제재’에 경종을 울린 사례가 잇따랐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위협을 가했다가 정작 본인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이들이 대상이다. 이들이 저지르는 사적 제재 자체도 문제지만, 무고한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형사6단독 유상범 부장판사는 최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유튜브 채널 ‘집행인’ 운영자 20대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566만원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자기 유튜브 채널에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최신 근황이라는 제목 등으로 이들의 이름과 사진, 직장 등 개인정보를 수차례 무단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의 구현’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내세웠지만, 그가 공개한 대상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해자로 형사처벌 받은 적 없거나 영상에서 주장한 발언을 한 적이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이 허위 사실에 따른 무고한 피해자들이었다. A씨는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제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자료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영상으로 제작해 유포했다. 이로 인한 피해자만 20여명 정도로 알려졌다. 무고한 피해자들은 해고와 이혼 등 불이익을 감내해야만 했다.
유 부장판사는 A씨가 정의 구현이 아닌 조회 수를 통한 광고 수익을 실질적 동기로 삼아 타인 인격권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꾸짖었다. 유 부장판사는 “수많은 제3자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이버 폭력을 비롯한 2차 피해가 깊고 광범위할 것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유 부장판사는 유튜버들의 사적 제재에도 경종을 울렸다.

그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적 응징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특히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범죄자로 오인되고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본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 기반은 심각하게 침식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명확한 기준과 경계를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고 엄중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이 사건 가해자라며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 ‘전투토끼’ 역시 다음 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는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또 다른 유튜버 ‘나락보관소’ 등 다수 유튜버도 수사를 받거나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최근 광주에선 음주운전 의심 차량과 추격전을 생중계하던 중 사망사고에 연루된 유튜버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광주지방검찰청 형사1부(허성환 부장검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협박 등 혐의로 최모(42)씨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해 9월22일 오전 3시50분쯤 광주 광산구 산월동 한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음주운전 헌터’ 유튜버로 활동하는 최씨는 사건 당일 30대 중반 남성이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음주운전 의심 차량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추격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생중계했다. 최씨의 구독자들이 운전하는 차량 2대도 추격에 합류했다. 이들에게 쫓기던 운전자는 주차된 대형 화물차를 들이받고 사망했다.

최씨는 2023년 12월 음주 사실이 없는 운전자를 차량 운전석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 관계자는 “사적 제재를 명목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위험을 발생케 하는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솜방망이’ 사법 판결에 대한 불신과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유튜버들이 늘며 사적 제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를 주제로 한 ‘더 글로리’, ‘모범택시’ 등 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실제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도 현실에서 사적 제재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적 제재의 경우 사회적 위험성이나 범행의 계획성 등으로 인해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과)는 “사적 제재는 통쾌한 대리 복수라는 외관을 보이지만, 본질은 상업적 수단의 극대화”라며 “피해자와 그 가족보다 유튜버, 사이버 레커들이 주인이 돼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들도 문제지만 이를 즐기며 상업적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사법부나 수사기관에서는 사적 제재에 대한 엄정한 대응으로 사회 규범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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