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성 언론인이 러시아 점령지에서 취재하다 사망했다. 시신까지 참혹하게 훼손됐다. 서방 언론들이 공동 취재팀을 꾸려 이같은 전쟁의 참상을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포스트, 우크라이나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프랑스 비영리 탐사보도매체 포비든스토리즈 등의 합동 탐사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사자 시신 757구를 송환했다. 송환자 중 마지막 757번째 시신은 다른 시신들보다 유독 작고 가벼웠다. 인식표에는 ‘이름 미상, 남성, 관상동맥에 심한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시신의 정체는 우크라이나 여성 언론인 빅토리야 로시나였다.

시신은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전기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화상이 남았다. 갈비뼈와 턱 아래 목뿔뼈(설골)가 부러져 있었다. 머리와 둔부에는 폭행의 흔적이 있었고 일부 장기는 사라진 채였다. 머리카락 삭발된 상태였다. 로시나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어떤 불법 고문 행위를 저지르는지 취재하려다가 러시아군에 붙잡혀 이런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로시나는 우크라이나인스카프라우다 소속 기자로 러시아 점령지에 잠입해 러시아군의 잔학 행위를 몇차례 폭로한 기자다. 그는 추가 취재를 하러 러시아 점령지 자포리자 인근 지하시설에 잠입하려다 2023년 8월쯤 러시아군에 붙잡힌 것으로 추정됐다. 아무런 혐의도 없고 변호사 조력도 없이 러시아 구금시설로 끌려간 그는 감금된지 1년쯤 된 시점에 유일하게 한번 외부세계와 접촉했다. 부모님과 4분 가량 통화가 된 것이다. 이미 구금시설에서 투여받은 정체모를 약물로 몸이 망가지고 식음을 전폐한 상황에서 마지막 통화였다.
러시아 당국은 로시나의 사망 사실을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측에 통보했다. 사망 당시 28세였다. 러시아에 붙잡힌 채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언론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시신 곳곳에 남겨진 상처들로 고문 피해의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우크라이나 검찰도, 우크라이나 내외의 언론들도 아직 로시나 기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취재팀은 이 프로젝트를 ‘빅토리아 프로젝트’라 이름짓고 추가 보도를 내놓을 예정이다. 가디언은 “로시나는 휴전협상에 뉴스가 집중된 사이 구금된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껴 이 문제에 집중하다 자신이 폭로하려했던 바로 그 범죄의 희생자가 됐다”고 전했다. 취재팀은 감금시설에서 로시나를 목격했거나 함께 구금됐던 구호활동가, 언론인, 사업가, 지역 정치인, 교회 지도자 등 포로 생존자들,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50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러시아 내에서 활동하는 정보원, 사임한 교도관 등을 통해 로시나의 최후 몇달을 추적했다.

그가 속했던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의 편집장은 “그녀는 제가 만난 가장 용감한 기자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로시나 기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기 위한 전쟁범죄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이날 보도와 관련해 “러시아가 납치한 민간인 인질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더 큰 관심과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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