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소리” 자부심 하나로 3대째 외길 ‘영천목탁공예사’
딱,딱,딱! 도르르! 세번의 겨울과 세번의 여름을 견딘 나무
그 위에 쌓인 사랑과 정성… 전통을 잇고 현대를 품다
딱딱딱! 도르르! 수 백번 깎고 다듬어도 두들겼을 때
울림이 맑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오늘도 나무 앞에 선다
딱, 딱, 딱! 도르륵!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8일)을 앞두고 경북 영천의 한 조용한 마을에 맑고 청아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봐도 절은 보이지 않는다. 소리를 따라 걷던 끝에, 커다란 목판에 ‘영천목탁’ 네 글자가 새겨진 곳에 닿는다. ‘최고의 소리’를 만들겠다는 자부심 하나로 3대째, 40년 동안 오직 목탁 하나만을 고집해온 영천목탁공예사였다. 활짝 열린 나무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작업장 안에서 한 남성이 나무토막을 걸어 놓고 기계를 연신 돌리며 목탁을 깎고 있다. 20대 후반 직장 생활을 접고 스스로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안진석(40)씨였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년을 아버지 밑에서 배웠지만,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네요.” 안씨는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소리를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 안종식 명인이 가르쳐준 방식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가고 있다.

“목탁은 단단한 나무여야 합니다.” 대추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있지만, 안씨는 살구나무를 최고로 친다. 살구나무는 단단하면서도 울림이 깊어, 소리가 맑고 오래간다. 시간이 지나도 그 청아한 소리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벚나무로 만든 목탁은 만들기는 쉽지만, 소리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살구나무는 구하기도 어렵고 다루기도 까다롭지만, 그만큼 소리의 깊이와 수명이 다르지요.”


목탁이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3년 이상이 걸린다. 먼저 어렵게 구한 살구나무를 2년 이상 자연 건조한다. 그 후 도끼로 나누어 토막을 내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 24시간 동안 수증기로 찐다. 열기를 식히고 일주일간 말린 뒤, 목선반으로 눈사람 모양을 만들고 속을 파낸다. 그다음에는 또 1∼2년 그늘에 두고 천천히 자연 건조를 시킨다.
모든 나무가 완성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건조 과정에서 미세한 틈이라도 생기면 탈락이고, 두들겼을 때 울림이 맑지 않으면 가차 없이 땔감으로 버린다. “3년 넘게 공들인 목탁 10개 중 진짜 목탁이 되는 건 3개 정도뿐입니다.” 안씨가 목탁을 “인내와 정성의 결정체”라고 말한 이유다.


안씨는 전통 불교 의식용 도구였던 목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명상 도구, 생활 소품, 감성 굿즈 등으로 목탁의 쓰임새를 확장하며, 젊은 세대와도 소통하려고 시도한다.
“전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살려, 불교문화의 대중화와 지역 공예의 가치를 동시에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이 청아한 목탁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편안히 하고, 행복을 느꼈으면 하지요. 이것이 저의 사명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씨는 오늘도 나무 앞에 선다. 수백 번을 깎고 다듬어도, 좋은 소리가 아니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세 번의 겨울과 세 번의 여름을 견딘 나무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시간과 정성. 그는 말한다. “청아한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전통을 잇고, 현대를 품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울림을 빚어내는 사람. 영천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된 맑고 깊은 소리가 오늘도 조용히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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