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방지할 긴급한 필요도 있어”
‘가처분 기각’→‘본안 인용’땐 “큰 혼란”
헌재 당분간 7인 체제 유지할 전망
헌법재판소가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재판관 지명에 제동을 건 것은 재판관 임명이 향후 위헌 판단을 받게 되면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대행이 임명을 강행했는데 본안 심판에서 ‘무효’가 되면 그사이 재판관들이 관여한 결정도 모두 뒤집어야 할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받을 권리 침해” 헌법소원·가처분
헌재는 이날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가 한 대행을 상대로 제기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권 행사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9명 만장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한 대행은 이달 8일 대통령 몫인 재판관 두 자리에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을 권한대행 자격으로 지명한 것이다.
헌재에 다른 사건이 걸려 있는 김정환 변호사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절차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이 아닌 사람이 헌법소원 심판을 재판하게 돼 신청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며 9일 헌법소원과 가처분을 신청했다.
헌재가 밝힌 가처분 인용 기준은 김 변호사가 청구한 헌법소원이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음이 명백하지 않고 △공권력 행사를 유지할 경우 발생할 회복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는지 △가처분을 기각한 후 본안에서 인용된 경우의 불이익이 반대로 가처분 인용 후 본안 기각 결정 때보다 큰지였다.
헌재 “한덕수가 그대로 임명하면 손해 발생”
헌재는 우선 한 대행이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관 지명·임명 권한이 없는데도 이를 강행한다면 신청인인 김 변호사의 ‘헌법·법률이 정한 자격·절차로 임명된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는 피신청인(한덕수)이 가까운 장래에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하는 등의 후속절차를 진행해 이 사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할 것임이 확실히 예측된다고 볼 수 있고,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의 종국결정 선고 전에 이 사건 후보자가 재판관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가처분 신청의 본안심판(헌법소원)이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는 경우가 아니라고 했다.
헌재는 김 변호사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고, 가처분 인용을 통해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도 있다고 인정했다.
헌재는 한 대행이 두 후보자(이완규·함상훈)를 임명하는 상황을 가정해 “신청인이 적시에 이 사건 후보자의 재판관 지위를 다투거나 이 사건 후보자가 헌법재판의 심리에 관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고 이 사건 후보자가 관여해 종국결정이 선고되는 경우 재심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짚었다.

기각·인용 ‘비교형량’…“당사자 권리침해”
‘가처분 기각 후 본안 인용’의 경우가 ‘가처분 인용 후 본안 기각’보다 불이익이 크다고도 판단했다.
먼저 가처분을 인용할 경우의 ‘불이익’에 대해선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의 종국결정이 선고될 때까지 재판관 2인의 임명이 지연될 것이나, 2인의 재판관이 퇴임한 4월19일 이후에도 7인의 재판관이 사건을 심리해 결정할 수 있고, 나머지 2인의 재판관 의견에 따라 사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임명을 기다려 심리 및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가처분이 기각된다면 두 후보자 임명 절차가 진행될 것인데, 향후 헌법소원에서 한 대행이 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고 결정하게 되면 “피신청인의 임명행위로 인해 신청인만이 아니라 계속 중인 헌법재판사건의 모든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가처분이 기각됐다가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인용될 경우 이 사건 후보자가 재판관으로서 관여한 헌법재판소 결정 등의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헌법재판소의 심판 기능 등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거나 “헌법재판의 규범력이 현저히 약화하고 헌법재판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재심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인용될 때까지 이 사건 후보자가 관여한 다수의 헌법재판사건에 대해 재심이 이루어짐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날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 효력을 정지한 헌재는 두 재판관 퇴임 후 당분간 7인 재판관 체제를 유지할 전망이다. 7인 재판관으로도 본안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헌재가 서둘러 결론을 내진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대통령 몫 재판관은 6월3일 당선되는 차기 대통령이 지명 및 임명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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