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안전하고 빠르게 운행하기 위해 철도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는 입체교차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철도와 도로가 평면으로 교차하는 철도 건널목이 국내에 771개가 운영되고 있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곳에 설치된 건널목이 다수이지만, 어떤 건널목은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하루에 수만 대의 차량과 수백 대의 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원선 용산역과 한남역 사이에 놓인 3개의 철도 건널목은 KTX-이음부터 전동차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차가 하루 250회 이상 통과한다.
2024년 기준 전국 18개 건널목에서는 하루 100회 이상 열차가 통과하고 있다. 이렇게 열차가 양방향으로 빈번히 통과하는 건널목에서는 차단기가 올라가던 중 반대편 열차가 접근하면서 건널목 위에 보행자나 차량이 있는 상태에서 차단기가 다시 내려오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빨리 걷기 어려운 노약자나 운전이 서툰 운전자에게는 아찔한 순간이며,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 인접한 건널목에서는 건널목 진출 시 도로에 진입하기가 수월하지 않으므로 건널목 위에 대기행렬이 형성될 수 있다. 통상 건널목 위에 정차하지 않기 위해 앞 차량이 건널목을 빠져나간 후 건널목에 진입하지만, 이 경우에는 앞 차량이 건널목을 지나 도로에 진입한 후에나 건널목에 진입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성급하게 건널목에 들어섰다가는 건널목 위에 정차하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철도 건널목 차단시설과 도로교통신호기의 연동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추진 실적은 30곳에 불과하다. 현재 적용되는 연동화는 열차 도착이 감지되면 건널목 경보장치 작동과 함께 건널목 진입 방향 도로교통신호를 적색으로 바꾸는 단순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열차 운행 횟수가 많거나 혼잡한 교차로에는 적용하기 어려우며, 연동화로 인한 도로교통 간섭의 영향이 작은 교차로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철도 건널목 안전대책은 입체화를 통해 건널목을 폐지하는 것이지만,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건널목의 수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연간 4회 이상 건널목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당 평균 0.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사고와 비교하면 2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전체 교통사고 중 철도 건널목 사고는 매우 작은 비중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높은 치사율과 장시간 철도 운행 중단으로 승객에게 미치게 되는 영향, 사고 외 이용자들이 경험하는 위험 상황까지 고려하면 철도 건널목 안전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고속열차 운행이 확대되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보급되는 장래 여건을 고려하면 더욱 적극적인 관리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 수준은 높아졌으나, 우리는 여전히 어떤 사고나 안전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안전한 교통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후 처리가 아닌 선제적 안전관리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안전관리 방식에 머물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도로교통신호 연계를 의무화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시도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야 할 때이다.
김수현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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