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옥천골 벚꽃 뒤늦게 활짝 경천따라 핑크 물결/양지천 산책로는 꽃잔디·튤립·수선화 피어 온통 꽃세상/채계산 출렁다리에선 섬진강 아찔하게 즐겨/강천산 계곡에도 싱그러운 봄 내음 물씬/고추장·장어·돼지고기 수육의 환상적인 조화 순창삼합 꼭 먹어봐야

메마른 가지 끝에 살짝 얼굴 내민 핑크. 꽃샘추위 물러가고 따뜻한 햇살 쏟아지니 몽글몽글 기지개를 켜다 그만 팝콘처럼 톡톡 터져 버린다. 마치 애타게 기다리던 그리운 이의 봄날 편지처럼 반갑게. 수줍어 발갛게 물든 뺨처럼, 막 사랑을 시작한 이의 두근거림 닮은 연분홍꽃잎 영화처럼 흩날리는 옥천골 벚꽃길을 걷는다.


◆짧게 머물지만 그래서 더 화려한 벚꽃
올해는 유난히 꽃소식이 늦다. 꽃축제에 아예 꽃이 없게 만들 정도다. 지난달 27~30일 열린 전북 순창군 옥천골벚꽃축제도 마찬가지. 축제가 시작됐지만 마른 가지는 꽃봉오리를 단단하게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꽃이 하나도 없어 축제 관계자들을 애태우게 만들던 벚꽃은 지난 주말에야 핑크 꽃잎 하나둘 터뜨리기 시작했으니 이번 주말 절정을 이룰 것 같다.
옥천골 벚꽃길은 순창 시내를 가로지르는 경천변을 따라 옥천교~교화교~경천교 사이 1.6km가량 이어진다. 경천교 인근 벚꽃길 입구로 들어서자 꼬마 아이들 닮은 노란 개나리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산책로를 따라 양옆으로 수령 50년이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 100여그루가 늘어섰다. 이제 막 연분홍 꽃잎을 드러낸 벚나무 가지들이 서로 얼싸 안으며 터널을 이룬 풍경은 수채화가 따로 없다. 마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올해 순창은 꽃놀이가 하나 더 늘었다. 경천 인근 양지천 산책로에 튤립과 수선화 16만본을 심은 덕분이다. 양지천으로 들어서자 노란 수선화가 피기 시작해 삭막하던 산책로를 화사하게 꾸미고 있다. 도로 아래 경사면에는 붉은 꽃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화사한 봄의 색상을 선물한다. 조간만 알록달록 튤립까지 더해지면 양지천은 온통 꽃세상으로 변할 것 같다.


순창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동북쪽으로 15분을 달리면 봄날을 아찔하게 즐기는 채계산 출렁다리를 만난다. 가파른 계단을 20여분 올라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낮 기온이 섭씨 20도 가까이 오르니 옷도 가볍고 발걸음도 사뿐하다. 오르는 길 중간쯤 전망대가 등장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20대 여성이 어머니와 예쁜 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그들 머리 위로 채계산 출렁다리가 양쪽 봉우리에 아찔하게 걸쳐져 있다. 무주탑 산악 현수교인 채계산 출렁다리는 지상에서 높이 75~90m에 설치됐으며 길이는 270m에 달한다. 예상보다 많이 출렁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기분이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채계산은 이름이 다양하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라 책여산(冊如山), 순창군 적성면 적성강(섬진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 산의 기묘한 바위들이 꽃 같아서 화산(花山)으로 불린다. 채계(釵笄)는 ‘비녀’란 뜻. 채계산을 하늘에서 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이란다. 이에 채계산은 ‘월하미인(月下美人)’이란 별명도 붙었다. 실제 이곳에선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소리꾼이 많이 배출됐는데 조선말기 명창 이화중선도 이곳에서 득음에 경지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강천산 물 맑은 계곡에 봄 오다
순창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차로 15분 거리 강천산도 봄으로 물들었다. 주차장에서 강천사까지 2km 거리의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져 천천히 걸으며 봄내음을 만끽하기 좋다. 왕복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 10여분 걸어 들어가자 깎아지른 수직 절벽을 따라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병풍폭포를 만난다. 인공폭포인데 자연경관이 워낙 수려해 진짜 폭포라해도 믿겠다. 볼록한 등에 머리를 쭉 빼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거북이 모양이라 거북바위로도 불린다. 병풍바위 아래는 갓바위가 놓여 있는데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폭포가 떨어지는 소가 그리 깊지 않아 밤마다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 어느 날 신선이 목욕을 한 뒤 깜빡 잊고 갓을 놓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갓이 변해 갓바위가 됐단다.

병풍바위 하트존에서 추억 하나 쌓고 지저귀는 새소리 즐기며 걷는다. 순창을 대표하는 고추 모양 금강교, 장을 담그는 메주 모양 송음교, 비가 올때만 폭포가 만들어지는 천우폭포를 지나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이 이어진다. 건장한 사내의 근육질 몸매를 닮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간 모습이 장관이다. 깊고 푸른 물이 가득한 용소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강천사에 닿는다. 대웅전 앞마당에 선 높이 2.35m 오층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강천사 중창 때에 세웠다. 강천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입구에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거대한 모과나무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높이 14m, 지름 105㎝, 나뭇가지가 퍼진 너비 9.8m에 달하는 모과나무는 수령 600년을 훌쩍 넘었다. 지금도 가을이면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달린다니 나무의 생명력은 참 대단하다.


◆순창 고추장과 삼합의 맛있는 만남
한식은 장맛에서 나온다. 그런 장류가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미식의 도시 순창이다. 멥쌀과 대두를 4대6 비율로 만든 메주에 고춧가루, 찹쌀, 엿기름, 소금을 넣어 6개월에서 1년 정도 숙성시키는 순창 고추장은 멥쌀 덕분에 단맛과 구수한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찹쌀고추장, 보리고추장, 매실고추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찹쌀 가공형태에 따라 밥고추장, 떡고추장, 식혜고추장으로 나뉜다. 된장은 100% 콩으로 사각 메주를 만들어 두 달 동안 소금물에 담근 뒤 간장(소금물)을 분리해 6개월 숙성하는데 젖산균, 효모로 풍부한 맛을 낸다. 고추장, 된장은 콜레스테롤 감소, 혈당조절, 항암, 항노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몸에 좋은 순창 장류를 활용한 대표 음식이 순창삼합이다. 현지인 맛집 대궁에서 순창삼합을 주문하자 커다란 접시에 기름기 졸졸 흐르는 수육이 담겨 나온다. 보통 삼합은 돼지고기 수육, 홍어, 묵은 김치로 구성되지만 순창삼합은 홍어 대신 장어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순창 된장으로 삶아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수육 위에 청국장 소스가 오른 모습도 독특하다. 소스는 잘 말린 표고버섯과 야채를 들기름으로 정성스럽게 볶은 뒤 순창 된장(청국장)으로 한번 더 맛을 더한다. 접시 가운데 담긴 간장 김치에 수육 한 점 얹어 입에 밀어 넣자 고소하면서 깊은 수육 맛에 눈이 크게 떠진다. 간장 김치는 잘 익은 김치를 순창 간장에서 숙성시켜 감칠맛을 극대화시켰다.

삼합은 보통 한꺼번에 먹지만 순창삼합은 수육과 장어를 따로 먹는다. 고추장, 간장, 된장 맛을 명확하게 즐기기 위해서다. 장어 위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고추장 소스와 파채가 얹어져 있다. 소스는 과일, 한약재 등을 넣어 끓인 육수에 순창의 발효기술로 만든 토마토 고추장을 넣어 발효하는데, 뛰어난 육질을 자랑하는 섬진강 민물장어와 찰떡궁합이다. 순창군이 미쉐린가이드서울 더 플레이트에 선정됐던 두레유 유현수 오너셰프와 함께 개발한 순창삼합은 대궁, 녹원, 뜨란채에서 맛볼 수 있다.
순창 장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순창발효테마파크로 가면된다. 우리 고유의 장 문화를 다양한 전시, 체험, 놀이로 재구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특히 발효에 관련된 효모와 미생물 10가지를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인기 높다. 모두 10개 전시장으로 구성됐으며 푸드사이언스관은 꼭 들러야 한다. 세계의 음식 문화를 시작으로 누룩과 효모 등 발효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테마파크 인근 순창전통고추장마을에는 업체 32개가 입주해 장 만들기를 체험하고 착한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4호 강순옥 명인이 운영하는 순창장본가에선 전통 고추장, 조선된장, 조선간장으로 맛을 낸 다양한 전통 장아찌류도 만난다.


발효의 본고장이니 막걸리와 약주 등 전통술을 빼놓을 수 없다. 순창읍 지란지교로 들어서자 마당 평상에서 말리는 구수한 누룩향이 비강으로 마구 파고든다. 임숙주 대표는 “누룩을 햇볕에 잘 말려야 해로운 균들이 없어져 술을 빚을 때 잡내가 없어진다”고 귀띔한다. 일체의 첨가물 없이 발효 100일, 숙성 90일을 거쳐 탄생하는 지란지교 탁주는 알코올도수가 13%다. 오직 전통누룩, 쌀, 물만 사용했는데도 막걸리에서 잘 익은 과일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100일 동안 저온발효를 거칠 때 단백질 등이 잘게 쪼개지면서 과일향으로 바뀐단다. 노릇노릇 익힌 육전에 당도와 산도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 탁주 한잔 곁들이자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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