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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정함이 유전되기를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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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0 23:44:19 수정 : 2025-04-10 23: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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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를 닮는다. 어쩌면 이 말은 내러티브 안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폭싹 속았수다’는 딸 금명(아이유)이 어머니와 아버지,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시절의 사모곡이다. 자식이 바라본 부모와 그 자녀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올 연초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수라처럼’도 언뜻 떠오른다. 1979년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아수라처럼’에서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모른 체하는 어머니를 네 딸은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거나 비판한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연출에 당대의 일본 배우가 유감없이 펼치는 연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 강점이다. 바꿔 말하면 2025년에 재등장한 ‘아수라처럼’의 정당한 리메이크나 각색의 사유를 추측하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른 공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는 장면이 한 군데 있다. 네 자매가 까슬한 발뒤꿈치로 엄마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우리 정서에서 ‘엄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틋하고, ‘아버지’는 너무도 묵직하다. 총 16화 에피소드의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관식(박보검/박해준)의 인생을 사계절에, 제주 바다에 빗대어 그린다. 뜻 없이 돌아오는 계절마다 삶의 희비가 교차하듯 계절엔 달고 시고 짠 순간이 고루 담긴다. 1화는 애순의 시점에서 전개되는가 싶더니 금명(아이유)의 시점 아래에 놓이는데 그 안에서 애순과 관식, 금명의 시간이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로 파도처럼 오고 간다.

익히 회자된 대로 ‘폭싹 속았수다’에는 악인이 없고, 또 그것이 복고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띤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적대자인 악인이 없고, 드라마의 이야기는 서사의 법칙이 아닌 평범한 주변의 삶을 모티프로 하고 있기에 오히려 더 인생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어느 마디마다 애순과 관식을 주저앉혔던 건 악한 의도를 지닌 특정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거쳐온 세월과 시대 그 자체였다. 또 애순과 관식을 일어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가끔은 따스하고 부드럽게, 때론 서툴고 거칠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물려 내려진 다정함이 이 드라마에서 순환한다.

 

성장한 자녀의 눈에 보이는 부모의 굳은살 아래 사실은 몇 번이고 생채기 입었을 여린 소년과 소녀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유채꽃밭에서 부푼 가슴으로 미래를 말하는 소녀 애순과 소년 관식의 단꿈은 이루어진 적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돌아보니 세월은 무심히 지나가 버린 봄이었고, 그 아래에는 발목 꺾인 꿈들로 가득했더라는 이 장면에서 가슴이 아려온다. 그들이 한때 품었던 다정함은 금명이 닮아 다시 애순과 관식을 향한다. 다정함이 돌고 돌아 끊어짐 없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굴곡 어린 시대를 살아낸 어버이를 향한 위로이자 지난 봄을 향한 애달픈 예찬이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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