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다는 말이 어떤 풍경을 품었는지 알 것 같아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핥아 주는 초원을
강물에 퍼지는 무리의 살냄새를
알 것 같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온몸을 글썽글썽 만져 주는 눈빛이
입술에 닿으면
나는 알 것 같아
순하다는 말이 지금 얼마나 먼 길을 돌아오는
중인지
나를 찾아서
내 몸의 냄새를 찾아서

앓다 일어나 간신히 떠 넘기는 한 숟갈 죽을 생각한다. 희고 묽은 죽. 무엇이든 쓰고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얼핏 백지 같은 그 속에는 이따금 꿈꾸던 따스한 장면이 스며 있는 것도 같다. 순하디순한 풍경들. 이를테면, 초원의 짐승들이 붙어 앉아 서로의 몸을 핥는 모습 같은 것. 무리의 살냄새가 퍼지는 강물과 수평선을 따라 발갛게 익어가는 하늘. 그리운 누군가가 보이는 것도 같다. 걱정스레 아픈 몸을 살피는 얼굴이며 눈빛 같은 것.
한 그릇 흰죽을 앞에 두고 비스듬히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람을 생각한다. 시 속 사람은 지금 분명 혼자일 테지만, 그에게는 한 그릇 죽이 있다. 죽으로 인해 그는 기어코 몸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떠올릴 것이다. “나를 찾아서”, “내 몸의 냄새를 찾아서” 먼 길을 오고 있을 한 사람. 흰죽은 가르쳐 준다. 순한 것, 그런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거룩한지를.
박소란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