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지연·시스템 다운 등 사고 빈번
최근 5년간 전산장애 피해액 357억
2024년 9월까지 누적 피해액도 60.6억
한국거래소 2014년 이후 ‘무장애’ 표방
프로세스 개선TF로 선제대응도 무색
거래 놓친 손실피해는 결국 투자자몫
“주식에 투자하면서 거래소가 먹통인 건 처음 봐요. 이 정도면 한국장 떠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국거래소 먹통 사태가 발생한 18일 개인투자자인 이민석(40)씨는 “증권사 문제면 다른 증권사로 갈아타면 되는데 한국거래소가 문제면 어떻게 하느냐”며 이처럼 말했다. ‘7분간 먹통 사태’로 인해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무장애 시장 운영’을 통한 자본시장 레벨업을 기대해 온 거래소의 신뢰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의 전산 장애로 투자자들이 불편을 겪은 것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거래소 통합이후 첫 전산장애가 발생한 데다, 전 종목 거래가 중단됐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2014년 2월14일 거래소에선 1시간51분 동안 국채 3년물 매매 체결에 장애가 발생했다. 증권사의 비정상적인 주문 입력으로 거래소 주문 시스템이 정상 처리하지 못하고 다운돼 장애가 발생했다. 당시 거래소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2년 2월13일에는 국고채 5년물 일부 종목의 거래에 문제가 생겨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40분까지 5년물 거래가 중단됐었고, 2013년 7월15일에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에 코스피와 코스닥 관련 지표가 1시간가량 늦게 전송됐다. 여기에 증권거래 중개를 하는 전산시스템이 이상을 일으켜 유가증권시장 상장 종목과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183개 종목의 매매체결이 1시간 정도 지연되기도 했다. 심지어 코스피 마감이 거래소 전산 장애로 20분간 지연된 적도 있다.
IPO(기업공개) 과정에서도 거래 지연 등 문제를 두고 거래소에 대한 책임 논란이 일었다. 2022년 1월27일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일 증권사 HTS,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에서 1시간가량 서비스가 지연했고 거래소와 증권사 간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금융권의 전산사고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 된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9월까지 금융권 전산 장애 피해는 총 321건(357억원) 발생했다. 전산 장애 피해는 △프로그램 오류 △시스템·설비 △외부 요인 △인적 재해 등 발생했다. 특히 최근 피해 금액은 증가하고 있다. 2021년 41억7200만원(68건)에서 2022년 60억9800만원(62건), 2023년 74억7800만원(89건)으로 피해 금액이 불어나더니 2024년 9월 기준으로만 60억6600만원(35건)으로 집계됐다. 전산 장애로 인한 금융권 피해는 까다로운 선정기준과 피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 전산오류로 잃은 매도 및 매수 기회 손실을 포함하면 피해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4년 이후 내부 전산시스템 오류를 인정한 적 없던 한국거래소에서 전산시스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그간 거래소는 비상상황 발생 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산장애 대응 프로세스 개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전산 장애를 선제로 대비해 왔다. 지난해 6월 거래소는 유가·코스닥·파생시장·청산결제·IT(정보기술) 등 담당 임직원들과 전산 장애 대응 프로세스 개선 TF를 구성하면서 타 거래소의 전산 장애 사안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비해 왔다. 당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일부 종목이 90% 이상 낮은 가격으로 표시되는 전산 장애가 발생해 1시간가량 거래가 중단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거래소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주문은 시간우선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주문 체결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는 당초 장애 상황에서도 호가가 접수됐다고 설명했다가 이후 “전산장애가 발생한 시간에는 호가 접수, 거래가 모두 정지됐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특히 거래소 측은 “모든 이용자의 주식 거래가 다 똑같이 중단됐고 시간도 길지 않아서 혼란이 그렇게 크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개별 투자자에 따라 매수 및 매도 시점이 달라질 경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하루 주식 거래량은 최근 한 달 평균 13억주, 거래대금은 약 20조원이다. 먹통이 된 7분이면 약 2300만주, 약 3600억원이 거래될 수 있어서다.
거래소의 전산 장애로 인해 주식 거래 중단 사태가 일어나면서 한국 증시는 신뢰도 훼손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됐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국거래소의 전산 안정화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신뢰 확보와 직결되고 현재 금융당국이 진행 중인 자본시장 선진화의 발판이 된다”며 “향후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구체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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