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낭비로 ‘절멸’의 위기감에
다시, 태양과 바람에너지에 주목
해상풍력특별법 통과 반가운 이유
“안개가 걷히고 강한 바람이 눈을 하늘 위로 불어 올리기 시작했다. 볕이 든다. 아주 약하지만, 햇볕이다.
출발하자. 전지는 18% 충전되었다. 두 자릿수에 도달해 본 것은 오랜만이다. … 다시 안개가 하늘을 덮고 눈이 내려 차체를 가리기 전에 한 치라도 더 앞으로 가야만 한다.”(정보라 ‘너의 유토피아’)

‘나’는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스마트카다. 내가 있는 이곳은 햇빛은 귀하고 바람은 흔한, 흡사 화성과 같은 행성이다. 나의 소유주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팔다리를 휘두르고 머리를 천장에 부딪히는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결국 고향 행성으로 돌아갔는지 어디서 단체로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건 알지 못한다. 내 뒷좌석에는 고장 나서 계속 “너의 유토피아는”이라고 묻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앉아 있다. 지금 나의 유일한 말벗이다.
배터리를 갈아끼워야 하는 기계는 하나씩 방전돼 쓰러졌다. 태양전지를 쓰는 나는 살아남았다. 태양이 있는 한 어떻게든 나는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눈과 안개가 걷힐 때가 거의 없어 충전은 매우 고달픈 일이며, 평소엔 전력을 아끼려 생각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실내에 들어간다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피치 못할 이유로 방전 직전의 몸을 이끌고 한 건물에 들어갔는데, 충전구에 전기가 흐르는 게 아닌가! 충전을 하고 나서 알게 됐다. 건물 뒤편에 소형 풍력발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정보라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는 인간이 사라진 행성에 버려지듯 남겨진 스마트카가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태우고 배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해는 마시라. ‘스마트카의 사활을 건 스펙터클 충전 사수기’는 소설의 긴장감을 더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 본 줄기는 아니니 말이다. 재생에너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립 K 딕상 후보에 오른 작품의 권위를 빌렸음을 양해해 주시길.
태양은 1초에 히로시마급 폭탄 6조개만큼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 엄청난 에너지는 심지어 공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태양계에서 태양에너지를 직접 수확해 무언가를 도모한 건 지구의 식물과 일부 조류가 유일하다. 식물이 빛을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효율은 고작 3% 안팎이지만, 그걸로도 4억6000만년 넘게 대를 이어오고 있다.
동물은 전적으로 남(식물, 다른 동물)한테 에너지를 얻고, 그 ‘끝판왕’은 단연 인간이다. 인류는 나무, 석탄, 석유에서도 에너지를 얻어 문명을 일궜다. 화석연료는 직관적이다. 태우면 열이 나고, 그 열로 증기나 고압의 가스를 만들어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다. 자동차도, 배도, 비행기도 문제없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직관성 때문에 영국 철학자 겸 SF 작가인 올라프 스테이플던의 1930년 작 ‘최후 인류가 최초 인류에게’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물질을 낭비해 후손에게 원망 살 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모아 바람과 지열, 물로 에너지를 만들던 인류 문명이 어떤 이유로 절멸에 몰리게 된다. 여러 세대를 거쳐 가까스로 회복된 후대 인류는 다시 화석연료의 시대로 돌아간다.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20세기 후반의 우리는 양자역학과 유체역학 같은 현대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마침내 태양빛과 바람(바람을 만드는 건 태양열이다)에서 에너지를 수확하게 됐다. 부품이 제 기능을 하는 한 ‘너의 유토피아’ 속 스마트카처럼 우리는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비중도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한국은 그 3분의 1쯤 되니 갈 길이 아득한데, 얼마 전 해상풍력 특별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개발도 되기 전 난개발이라 비판받던 국내 해상풍력에 순풍 같은 소식이다.
소설 마지막에 스마트카는 모든 기능은 끄고 내부 온도를 높여 고장 난 휴머노이드에 온기를 나눠 준다. 배터리는 닳겠지만, 내일 해가 뜨면 다 괜찮아질 거라 위안하면서. 물질은 유한하지만, 에너지는 무한하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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