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계 무시못해…"푸틴, 시간 끌며 어려운 조건 제시할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휴전안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관측된다.
전쟁 지속을 토대로 한 우크라이나전 완승이라는 목표와 러시아에 친화적인 미국 정권과의 관계 유지가 상충하는 국면이 갑자기 형성된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러시아 정부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날 30일간의 일시 휴전안을 추진한다는 방안에 합의한 것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미국 측이 며칠안에 해당 협상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미·러 양국 정상이 재차 전화통화를 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종전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장에서 우위라고 판단해 지난 1월까지도 일시휴전을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최근 러시아는 트럼프 행정부가 친러시아 성향을 노골화하며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책을 180도 전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 덕분에 교착을 풀고 기세를 올렸다.
바로 휴전에 들어간다면 수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로 이룬 진군이 빛을 잃을 수 있는 까닭에 미국이 주도한 제안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교전중지 제안을 검토해보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특정 수준의 변화로 읽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조만간 러시아를 재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과 이번 주중 대화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휴전과 관련한 톱다운식 논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안을 건네며 '공이 러시아로 넘어갔다'고 결단을 요구한 것은 푸틴 대통령에게 상당한 악재다.
러시아군은 작년 8월 국경을 넘어 역습을 가해 온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겼던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 일대를 거의 탈환했다.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가 종전협상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로 관측되고 있다.
러시아 영토가 우크라이나에 점령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푸틴 대통령에게 상당한 불명예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쿠르스크 탈환전에서 승기를 잡자 지난 12일 직접 쿠르스크 전투 사령부를 방문해 회의를 진행하고 완전 수복을 지시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도 꾸준히 전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탈유럽 행보로 서방의 대러 전선이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개전 초 키이우 함락에 실패하고 패주한 이래 최대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러시아 내 주전론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일시휴전을 제안한 건 전선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려는 함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칼에 이를 거절해 '신속한 종전'을 장담한 트럼프의 체면을 구기는 것도 러시아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손해가 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며 우호적 태도를 취해온 트럼프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정치분석가 일랴 그라셴코프는 NYT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전술적으로 불리하지만 전략적으로 유리한 휴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 새뮤얼 채럽도 "러시아가 이것(30일 휴전)을 받아들이는 건 분명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면서 "조건 없는 일시 휴전을 원해서가 아니라 현재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휴전을 받아들이되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덧붙이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크렘린궁 상황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푸틴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조건대로 휴전이 이뤄지길 원하며 합의까지 시간을 질질 끌 것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저지하고, 옛 소련권 국가들이 밀집한 중·동유럽에 대한 나토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을 이번 전쟁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러시아의 친정부 성향 정치 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휴전에 동의하기에 앞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전달을 휴전 기간 중단하는 등의 전제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야나 스타노바야 선임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푸틴은 확실한 '예'나 '아니오'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면서 "푸틴이 휴전을 위한 몇몇 제스처를 내놓는 대단히 좋은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는 매우 가혹한 조건이 걸린 일시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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