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항소심 재판부에 100장 넘는 반성문 제출
법조계 “‘진지한 반성’ 필요…반성문 양 중요치 않아”
‘음주 뺑소니’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트로트 가수 김호중(33)씨가 한 달간 100여장의 반성문을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 자신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선 반성 여부가 양형 요소일 뿐, 반성문의 양 자체는 감형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진정한 반성을 하는지 판단하는 데 있어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는 항소심이 시작된 지난달에만 선처를 부탁하는 100여장의 반성문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김씨는 19일 항소심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지난해 11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범인도피 교사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9일 오후 11시44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서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도로 택시와 충돌한 뒤 달아나고, 매니저에게 대신 자수시킨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김씨는 자신 대신 매니저 장모씨가 허위 자백을 하러 가는 사이 경기 구리시의 모텔로 도주했다. 특히 모텔 입실 전 맥주를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 일명 ‘술타기’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씨는 또 장씨와 향후 수사를 대비해 허위 통화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당초 음주 사실을 부인하다 관련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이 나오자 사고 10일 만에 이를 인정했다. 다만 수사기관에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지 못해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1심 재판 직후 항소장을 제출한 김씨는 감형을 받기 위해 반성문을 써 내려 간 것으로 보인다. 반성문을 100장 넘게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실제 반성 여부를 확신하긴 어렵다. 다만 그의 감형을 받고자 하는 의지는 상당해 보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는 ‘진지한 반성’이 형의 감경 요소로 포함돼 있다. 진지한 반성은 ‘범행 인정 경위, 피해 회복, 재범 방지를 위한 노력을 조사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규정된다. 피고인은 자신의 진지한 반성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반성문을 활용한다. 반성문의 양은 그 의도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피고인들의 반성문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오직 감형을 위한 분량 채우기는 물론 대필 업체까지 등장하면서 반성문이 피고인들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요소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법조계는 우선 반성문의 양 자체는 양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반성 내용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 재범 방지 노력 등 반성의 핵심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이인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는 “사건 기록이나 증거 등을 검토하기도 바쁜데, 피고인이 반성문을 너무 많이 써서 내면 재판부 입장에서 오히려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며 “지금껏 피고인이 반성문을 많이 써서 감동했다는 판사는 본 적이 없다. 길지 않아도 진정성이 보이도록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안성열 법무법인 새별 대표변호사도 “반성문을 무조건 많이 낸다고 해서 양형에 절대적으로 참작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적절한 피해 보상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과 함께 진지한 반성문이 합쳐지면 미약하게나마 참작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또 진지한 반성 여부를 단순히 반성문 내용으로만 판단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피의자가 그동안 보인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의 경우 범행 후 보인 태도에 비추어 봤을 때, 그가 작성했다는 100장이 넘는 반성문에서 진정성이 보일지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나왔다.
판사 출신의 이현곤 새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김씨는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였다”며 “이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김씨가 아무리 반성문을 많이 쓴다고 해도 재판부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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