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부과 않고 이중과세 논란 일어
與 ‘폐지카드’ 꺼내자 이재명 전격 수용
일괄공제액 상향 방안 합의 가능성도
정부도 유산세 → 유산취득세 논의 동참
일각 “초고소득층에만 혜택” 비판 제기
최고세율 인하 등은 합의 쉽지 않을 듯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속세제 개편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주장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 역시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이번 주 발표하는 등 개편 논의에 뛰어들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당초 배우자 공제 최저한도를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민의힘이 배우자 상속세 폐지 카드를 꺼내 들자 이를 전격 수용했다.

배우자 상속세는 이중과세 등의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상속세가 부의 세대 간 이전에 관한 세금임에도 같은 세대인 배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데다 배우자가 숨진 뒤 자녀에게 또다시 상속세가 부과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이혼으로 발생하는 재산 분할 과정에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배우자 사망으로 이전받을 때는 상속세를 부과하는 점 역시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는 배우자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상속세의 일괄공제액(5억원)을 높이는 방안 역시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일괄공제액을 10억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은 8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상속세 개편에 나서고 있는 건 중산층 표심을 염두에 둔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속세 과세대상은 1만9944명으로 과세비율은 6.8%였다. 1997년에는 과세대상자가 2805명으로 과세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 1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13억8289만원(부동산R114)으로 집계되는 등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일부 중산층에서도 상속세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개편의 배경이 되고 있다. 통상 일괄공제 5억원에 배우자 공제 5억원을 더한 10억원이 상속세 면제 기준이 되는데 10억원이 넘는 주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는 1998년 이후 한 차례도 조정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배우자 상속세 폐지가 초고소득층에만 혜택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우자의 법정 상속지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 30억원까지는 배우자 상속 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우자 상속세를 폐지하면 상속재산 30억원이 넘는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승근 한국공학대 복지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4일 참여연대가 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은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 속에 금융자산은 순조롭게 증가하자 자산 과세 강화를 추진했고, 상속세도 강화했다”면서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으므로 향후 경제 성장의 정체를 피하기 어려우며 이는 소득세 비중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속세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상속세 개편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번 주 사망자의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에서 상속인별로 물려받은 자산 규모에 맞춰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변경되면 과세대상 재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 부담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유산취득세로의 개편은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추진된 바 있다. 2019년 2월 당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재정개혁보고서에서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변경하되 세수 중립적으로 과세표준 구간, 공제제도 등을 함께 개편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다만,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은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현행 50%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고, 최대주주할증 제도도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최고세율 50% 적용대상자는 2022년 기준 전체 국민 중 955명에 불과하다며 최고세율 인하는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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