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일부 중국 고위 인사와의 만남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며 유럽연합(EU)과 중국 간 관계 개선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유럽이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조치로 주목된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2023년 4월부터 중국과 이란을 대상으로 고위 인사와의 공식 접촉을 제한해왔다. 이는 2021년 중국 신장 지역 인권 침해 논란으로 양측이 상호 제재를 주고받은 이후의 후속 조치였다. 당시 지침은 “제재 대상인 인사(의원)는 유럽의회 방문 초청을 받지 않으며,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공식 임무 수행을 위한 방문도 없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변화는 지난달 고위 의원 회의에서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이 기존 조치를 철회할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유럽의회 대변인은 “제3국 대표와의 접촉에 관한 지침은 매우 특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도입된 것”이라며 “지난해 11월 도입된 새로운 내부 규정으로 기존 지침은 불필요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행동강령에 따라 유럽의회 의원들은 투명성 등록부에 포함된 이해 당사자 및 제3국 공공기관 대표와의 모든 예정된 회의를 공개해야 한다. 또 제3자가 여행, 숙박 또는 생활비를 일부 또는 전부 부담할 경우 이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중국 당국은 오랫동안 유럽의회와의 관계 개선을 원해왔던 만큼 이번 조치로 중국 관련 특정 지침이 사라진 것은 중국에 유리한 결과로 평가된다. 다만 유럽의회는 중국과 이란에 대한 지침이 여전히 필요한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2021년 3월 유럽의회 의원들을 제재한 이후, EU와의 투자 협정 비준이 사실상 동결된 상태다. 이에 중국 당국은 최근 브뤼셀과 뮌헨에서 제재 대상이었던 의원들과의 회담에서 제재 해제를 통한 협정 부활을 다시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과거 중국은 상호 제재를 동시에 해제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비대칭적인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이 제재를 하나 해제할 때마다 4~5개의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이는 유럽 측 제재 인원이 5명인 반면, 중국의 제재 대상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변화는 급변하는 지정학적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대서양 동맹은 수십년 만에 가장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와의 정보 공유를 중단했고, 유럽에 대한 무역 전쟁도 예고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럽 내 매파들까지 중국에 대해 부드러워지는 분위기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최근 연설에서 EU가 베이징과 무역 및 투자 관계를 심화할 수 있다고 밝히며 새로운 협정 체결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 역시 ‘매력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외교관들은 유럽 각국을 방문하며 다자 질서를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내 강경파들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유럽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루사예(盧沙野) 중국 유럽사무 특별대표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을 향해 이렇게 뻔뻔하고 지배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유럽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유럽의 독자적 외교 노선을 독려했다.
루 특별대표는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 시절 ‘전랑’(늑대 전사) 외교관으로 불리며 프랑스 외교부에 일곱 차례나 호출됐던 인물이다. 이에 이번에 나온 그의 발언은 중국이 과거의 강경한 태도에서 벗어나 유럽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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