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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분쟁지도 ‘美 팽창주의’ 노골화… “인종청소” 비판도 [뉴스 투데이]

입력 : 2025-02-05 17:58:26 수정 : 2025-02-05 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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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가자지구 장악’ 구상

“가자지구, 죽음·파괴 상징” 규정
제3국 ‘영구적 재정착’ 처음 언급
사위 쿠슈너 아이디어 채택 분석

“무슨 권한으로” 질문엔 즉답 피해
200만명 이주 가능 여부도 의문
팔계 공화 前 의원 “용납 안 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take over)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주변 아랍국으로 보내고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노골적인 친(親)이스라엘 행보이자 ‘미국 우선주의’를 해외 분쟁지에도 적용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각각 독립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게 만든다는 ‘두 국가 해법’에도 맞지 않아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센 데다 미 공화당 내에서도 ‘인종청소’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를 “죽음과 파괴의 상징”이라고 규정하며 이 같은 구상을 내놨다. 촘촘히 얽힌 지하 땅굴 등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요새처럼 변한 가자지구에서 무기 해체, 부지 평탄화, 파괴된 건물 철거 작업 등을 거쳐 ‘전면 재개발’에 착수,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그러나 미국이 가자를 장악해 장기 소유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권한으로 가자지구를 장악한다는 거냐’는 기자들 질문에 “난 이것을 여러 달 동안 매우 긴밀히 연구했고, 모든 다른 각도에서 봤다”며 “중동의 다른 나라 정상들과 대화했고 그들도 이 구상을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즉흥적 계획이 아니며 주변국 동의도 얻었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즉답을 피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네타냐후 총리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중동 내 제3국 재정착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고 총에 맞지 않는 좋은 집에 영구적으로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가 나오길 바란다고도 했다. 그가 지난달 말부터 여러 차례 가자 주민을 제3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언급하긴 했지만 ‘영구적 재정착’을 언급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200만명에 달하는 가자 주민의 영구 이주가 과연 가능한 방안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이후 72만명이나 난민 신세로 전락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센 저항이 예상돼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투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 추방에 나선다면 인종청소에 해당할 뿐 아니라 주변국 반발로 중동 정세가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팔레스타인계인 공화당 소속 저스틴 어마시 전 의원은 “미국이 군대를 배치해 가자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몰아낸다면 무모한 점령이 될 뿐 아니라 인종청소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셈이 된다”며 “양심이 있는 미국인이라면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고 규탄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크리스 밴홀런 미 연방 상원의원(민주·메릴랜드)도 “역내 아랍 파트너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동시에 이란 및 다른 적대국에는 탄약을 제공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폐허로 변한 마을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주민들이 15개월간 이어졌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걸어가고 있다. 라파=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를 재건해 리비에라 같은 유명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두고는 미국 우선주의와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왔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그는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핵 담판’ 가능성을 언급하며 북한의 해안 지대 콘도 개발을 거론한 바 있는데, 북·미 핵협상처럼 이·팔 분쟁 해결 노력도 경제협력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지난해 3월 하버드대 대담에서 “가자지구 해안가 부동산은 매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하며, 트럼프가 쿠슈너의 아이디어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밝힌 해법은 가자지구를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으로 여기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만 만족시키면서 미국이 이권을 챙겨가는 방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탈퇴를 지시한 데 이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가자지구 장악 구상을 밝힌 트럼프의 행보가 ‘미국 소프트파워의 훼손’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구상이 파나마운하 운영권 반환 요구, 캐나다·그린란드 편입 의지 표명에 이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 팽창주의 야망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라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환상’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특유의 ‘충격과 공포’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리비에라=해안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이탈리아 국경에 이르는 코트다쥐르, 프랑스와 접한 이탈리아 서부 해안 등 지중해에 접한 리비에라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어 ‘아름다운 해안’을 통칭한다. 일대에는 세계적 리조트가 몰려 있어 휴양지의 대명사로도 꼽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서쪽도 지중해와 면해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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