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경험없는 청년층, 양질의 일자리 찾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김모(26) 씨는 지난해 한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마케팅 직무를 희망하며 여러 기업에 지원했다. 그는 채용 과정에서 번번이 “경력 2년 이상 우대” 또는 “즉시 실무 투입 가능자 우선”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신입 공채마저 점점 줄어들면서, 경력직 채용 중심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 씨는 원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6개월 동안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했다.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그는 “경력을 쌓아야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경력이 없으면 시작조차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근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면서 사회초년생의 경제적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청년층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고, 생애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신입보다 업무 경험이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 문화가 확산하면서 사회초년생이 평생 벌 수 있는 소득의 현재 가치가 약 1억 원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대와 30대 간 상용직 고용률 격차의 40%가 경력직 채용 증가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대응하고자 정기 공채 대신 수시 채용을 늘리고 있으며, 이는 경력직 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기업 신규 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경력직 비중은 2009년 17.3%에서 2017년 30.9%, 2021년 37.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20대는 취업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취업 기회가 더욱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20대와 30대 간 상용직 고용률 격차가 17%포인트(p)인데, 이 중 약 40%에 해당하는 7%p가 경력직 채용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 채용 확대로 인해 비경력자의 취업 확률이 낮아지면서, 20대의 상용직 고용률은 44%에서 34%로 10%p 하락한 반면, 30대는 54%에서 51%로 3%p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20·30대 간 고용률 격차는 10%p에서 17%p로 확대됐다.
첫 취업이 늦어지면서 사회초년생의 생애 총 취업 기간은 평균 2년 단축(21.7년→19.7년)되었으며, 생애 총소득의 현재 가치는 연 5% 금리를 적용했을 때 3억 9000만 원에서 3억 4000만 원으로 13.4% 감소했다.
경력직 채용 증가로 인해 청년층의 구직 의욕이 저하될 경우 청년 고용률이 추가적으로 5.4%p 하락하고, 30대와의 격차가 1.1%p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생애 총 취업 기간이 1.6년 추가 단축(18.1년)되고, 생애 소득의 현재 가치도 10.4%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경력직 채용 선호가 지속될 경우 사회초년생의 총 취업 기간이 21.7년에서 18.1년으로 줄어들고, 이들이 평생 벌어들이는 소득의 현재 가치도 3억 9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1억 원 가까이 감소할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HR테크 기업 원티드랩이 진행한 '2025년 채용시장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경력직 중심의 채용 흐름이 확인됐다.
작년 12월 2일부터 17일까지 취업준비생 400여 명, 직장인 1200여 명, 인사담당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신입 취업준비생 60.2%는 2025년 신입 채용 환경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의 채용 계획을 살펴보면 인사담당자 78.2%가 4년 차 이상의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신입직 포함 중고 신입(0~3년 차) 채용을 계획하는 기업은 21.8%에 불과했다.
경력직 중심 채용이 강화되면서 직장인들의 이직 의향도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은 2025년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68.7%는 이직 시장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인사담당자 70%는 회사의 채용 규모가 예년과 비슷하거나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경력직 채용 확대는 기업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신입 구직자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산학협력, 체험형 인턴 등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층이 취업 시장에 보다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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