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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잊힌 그 곳… 감각만이 남겨진 풍경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입력 : 2025-02-04 06:00:00 수정 : 2025-02-03 20: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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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민, 미끄러지는 것과 스미는 것

실제 장소의 역사적·생태적 특성 생략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그리기 시도
매번 달리 발화하는 회화적 언어가 돼

섬, 고립과 창조 동시에 상징하는 장소
빈 캔버스는 저마다의 무인도로 표류
유채가 미끄러지고 수채가 스며들어

◆장면들

흐르는 화면과 배어든 화면의 시차를 가늠해 본다. 지나는 궤적마다 서로에게 뒤엉키는 찰박한 붓과 닿는 자리마다 물든 자취로서 중첩되는 가뿐한 붓, 그 간격 가운데 보이지 않는 빈칸을. 물감의 이지러짐이 감각의 잔상이라면, 하나의 화면이 애타게 설득하는 동안 또 다른 화면은 무던히 내보인다.

습기 어린 물가의 눅진한 풍경을 담은 회화 ‘비린 곳’(2015)은 유채 물감의 점성 위로 어른대는 공감각적 환영과 그것이 자아내는 정서에 호소한다. 장재민이 그려온 대다수의 장면이 실제 장소의 역사적, 생태적 특성에 관한 참조를 생략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화면 위에는 시각적 풍경과 촉각적 물감으로부터 촉발된 감각만이 남겨진다. 그곳들은 ‘잊힌’ 무명의 풍경으로 지칭됨에 따라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그 이름을 ‘잊은’ 장소가 됐다. 특정한 장소에서 개인이 경험한 정서를 복기하여 회화의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란, 대상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얼마간 지워냄으로써 그것을 그리는 이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화면 위에 놓인 장면은 현실 세계에 근거를 두었음에도 다분히 주관적으로 재해석된 특유의 정서를 전달한다.

장재민, 비린 곳(2015)

다섯 폭에 걸쳐 묘사한 저수지의 면면은 이어질 듯 끊어지는 원본으로서의 기억을 은연 중에 암시한다. 젖은 흙과 풀의 빛깔을 머금고 탈색된 장면들이 고독한 어조로서 과거의 풍경을 증언하는 중에, 실제 지리적 좌표를 가늠하도록 도울 표지 위의 언어들은 일제히 흐리게 삭제된 모습이다. 장면이 내비치는 감각은 외연적 세계로부터 기원했으나 내면의 시간 속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일종의 혼종적 실체이다. 작가의 현재에 난입한 우연과 직관을 포용하며 재창조되는 저마다의 화면은 재료의 물성과 도구의 특성, 형식과 몸짓의 변주에 따라 매번 달리 발화하는 회화적 언어의 장이 된다. 중력을 따라 흐르고 맺히는 물감의 흔적들을 감내하고, 그 획을 밀어내는 또 다른 붓의 무게를 견뎌내며, 매 순간 휘발하는 감각을 끝내 소환하고자 하는 집념의 기록으로서다.

사이의 시차를 괄호 속에 남겨둔 채 보다 가까운 시간대의 화면으로 눈길을 옮겨 본다. ‘섬 그림 #10’(2024)은 유독 가볍고 사근사근한 촉감으로, 또한 어딘지 낯설게 무던한 표정으로, 흐트러진 장면 하나를 시선 앞에 제시한다. 그간 장재민은 수성 아크릴릭 과슈로 표현 재료를 바꾸었다. 또한 장소를 겪어내는 단계를 생략하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그리기를 시도하면서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전자는 유채가 지닌 즉흥성과 우연의 효과를 축소시키고, 수채의 반투명한 포용력으로 하여금 붓질의 중첩과 수정 가능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지고 온다. 후자의 전환은 장소로부터 겪어낸 공감각을 회화로 전달하겠다는 과거의 목표를 전복한다. 재료와 형식뿐 아니라 회화의 행위에 대한 이유가 재편된다.

장소의 정체성은 한 번 더 지워진다. 또는 애초에 배제된다. 풍경에 대한 신체적 경험마저 덜어낸 뒤, 주변시를 자처하던 그의 회화는 더 이상 실재하는 어딘가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주관적이되 비교적 이성적인 판단에 기반하여 형식 실험에 몰두하겠다는 의도다. 결과적으로 화면에는 오롯이 회화만 남는다. 넓은 붓으로 채색한 수채 물감의 번짐 언저리에 어른거리는 환영들만이 공간 안에 놓인다. 그럼에도 그 이름 없는 장면들, 실존하지 않는 유령들은, 여전히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지시한다. 마땅히 낙원도 이상향도 아닌 익명의 무대들을 말이다. 출처를 잊은 기억과 경험, 지식과 역사의 잔흔으로부터 화면 위에 떠오른 섬이 또 다른 실체가 되어 화면에 현현한다. 온전히 진실이지도 허구이지도 않은 하나의 가설적 공간으로서.

장재민, 섬 그림 10(2024).

◆섬

섬의 비유를 떠올린다. 뭍으로부터 조각난 대륙섬과 바다 아래서 솟아오른 대양섬, 수심 속 진실을 숨긴 채 그만의 생명을 키워내는 신화적인 토양에 관해서다. 자신을 에워싼 바다로 하여금 육지와 단절된 섬, 그렇기에 오롯이 근원적인 섬은 고립과 창조를 동시에 상징하는 장소다. 보통의 것들과 분리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창조적이어야 하고, 온건한 창작을 위해서는 얼마간 고립되어야만 한다. 물 위에 뜨거나 잠긴 섬의 대지에 올라선 사람 또한 각자 표류하는 동시에 자생하는 섬이 된다. ‘섬 그림 #10’에 보인 수면 위의 나룻배도 그 자체로 섬인 동시에 자아의 투영이기도 할 테다.

수 개월 전 장재민은 제주로 갔다. 미지에 가까운 낯선 곳에서 겪은 적 없는 날들을 꿈꾸는 일이란 회화의 화면을 매번 새롭게 마주하는 화가의 마음과도 닮았다. 장재민은 최근의 작업이 회화로 재현한 장면 그 자체가 전달하는 미지의 감각에 관한 실험이라고 했다. 스스로 겪어낸 무엇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매개이기보다, 자신마저 최초로 대면하는 감각을 이끌어낼 매체로서의 회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빈 캔버스들은 저마다의 무인도다. 그 위에 어떠한 환영이 일어서기 전까지는. 그러다 이내 그곳에 표류하여 거주하는 삶들이 곧 섬의 의식이 된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섬, 유채가 수없이 미끄러지는 섬과 수채가 샅샅이 스미는 섬 사이의 바다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심 깊은 곳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거대한 땅을,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가진 섬을. 장재민이 거듭 그린 허구의 장면들은 인식의 수면 아래를 비밀리에 전제한다. 무엇과도 같지 않은 생경한 무대를 지으려는 자는 역설적으로 늘 그곳에 있었던 바다 위 대지를 밟고 일어나야 하니까.

풍경의 바깥에 선 그는 한편 제주에 있다. 결코 무명의 섬이 될 수 없는, 가장 뜨겁고 또 가장 차가운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지닌 제주라는 섬에. 대상의 정체를 지우는 회화의 과정 끝에 도달한 그곳에서 어쩌면 새삼 다시 기억해야 할지 모른다. 그 모든 장소 위에 환영처럼 어른거리는 이름들을, 풍경의 바깥으로부터 들이치는 태풍과 눈의 뒤엉킴을, 중첩된 물감의 사이마다 파고드는 미신과 신비를 말이다. 경험을 지운 자리에 건너 올 어스름한 무엇의 정체를 상상한다. 발언의 주체를 회화에게 넘긴 화면 위 비운 여백마다 새롭게 스미는 것들이란 결국 발 디딘 그곳, 섬의 의식이지 않을까.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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