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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완벽해야만 아름다운가… 美의 의미를 묻다

입력 : 2024-11-25 20:36:08 수정 : 2024-11-25 20: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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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울 때 갈라짐·변색 등 개의치 않아
변화 지켜볼 뿐… 자연스러움 추구
“완벽하게 둥글어야 만이 궁극적 美일까 21세기 사는데 18세기 갇히면 안 돼”
이태원 박여숙화랑 12월 20일까지
이헌정 개인전 ‘달을 닮은 항아리에게 아름다움을 묻다’

“여행은 귀환으로 완성됩니다. 제게 달항아리는 이 같은 귀향이에요. 1년에 한 번씩 꼭 만들어 냅니다. 여행을 통해 ‘객관화된’ 내가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작가 이헌정은 “21세기 달항아리에는 21세기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예에서 출발해 도자 가구, 도자 벽화, 도자 건축, 영상, 설치미술 등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온 작가 이헌정은 달항아리 작업을 여행에 비유한다.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은 어릴 때부터 작은 배 ‘마탕’을 타고 바다로 나갑니다. 해도나 나침반도 없이 그냥 몸으로 깨우쳐 바다를 누비는 거죠. 머리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여행이에요. 마탕처럼. 그냥 직관적으로.”

 

그에게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가마에서 구워질 때 모양이 찌그러지든 갈라지든 내려앉든 도자의 살갗이 터지든 색이 변하든 개의치 않는다. 대다수의 도예가가 변형을 방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상과 모양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과 상반되게 그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 제어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항아리 (1)
항아리 (2)

“기존 도식을 따른 아름다움에 묶여선 안 됩니다. ‘완벽하게 둥근 달항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형태 자체를 외워버린 것일 뿐입니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답습하는 셈이죠. 굽다가 일그러지면 일그러진 대로 받아들입니다. 예술은 이미 만들어진 가치를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기술을 뛰어넘어야 예술이 된다고 한다. ‘눈물(감동)을 만들어 주어야 비로소 예술’이란 설명이다. 

 

“자신과 사회에 묻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해주는 것이 예술가의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달항아리는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배척당하고 만다. ‘이것은 아름답다’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획일적이고 강제된 아름다움을 소비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항아리 (3)

작가는 반문한다. 달을 닮았다는 항아리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달항아리가 진정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리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인지. 이처럼 되물어보는 용기를 가진 작가는 드물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8세기 달항아리에 갇히면 안 됩니다. ‘작품’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인데, 왜 18세기에 스스로 종속됩니까. 21세기 시대정신을 담아야 해요. 예술을 접하는 이유는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또 다른 사실이나 감정을 느끼고 별다른 생각을 끄집어내는 데 있습니다. 예술은 확인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열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체득하도록 돕는 연장 같은 것, ‘감정을 환기’하는 수단이에요.” 

항아리 (4)

그는 흙의 토련과정부터 모양을 잡는 성형, 그리고 소성과 초벌구이, 시유, 채색, 재벌구이 등 도예의 전 과정을 치열하게 몸으로 수행하며 작품을 빚어낸다. 도예뿐 아니라 드로잉, 페인팅, 설치미술도 마찬가지다. 흙과 물과 불을 다루는 동안 수반되는 깊은 명상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희열은 곧 그의 작품이 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편이다. 몸으로 체득한 자기만의 리듬을 작품에 투영한다. 그의 리듬은 생명력 넘치는 언어가 되어 관객의 마음에 공명한다. 

 

관습적인 경계를 넘어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 이헌정의 개인전이 ‘달을 닮은 항아리에게 아름다움을 묻다’라는 문패를 내걸고 12월20일까지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린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인 달항아리 16점과 사발, 함 등 100여점의 백색작품이 관객을 반긴다.

 

“이번에는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자리가 펼쳐졌어요. 파괴적인 형태, 흙을 다루는 방법 등이 이전과 다릅니다. ‘떠남’을 이야기하는 것과 ‘귀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듯….”

사발

이헌정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가천대학교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4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을 통해 역량을 알린 그는 2005년 청계천에 192m 길이의 도자 벽화 ‘정조대왕 능행반차도’를 제작했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 인도 예술가 수보드 굽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등 세계적인 예술가와 유명 인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해, ‘예술가의 예술가’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글·사진=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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