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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홀대’ 뒷말 무성… 尹, 임기반환점에 與와 공조 필수

의전은 형식이다. 대개는 그간 축적된 관례와 상식을 따른다. 참석자 배려, 불편·오해 최소화가 목적일 터다. 때에 따라서는 전반적 분위기와 태도를 지배하기에 실질적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외교·정치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나란히 앉는지 마주 앉는지부터 시작해 좌석의 형태와 높이·크기 차이, 인사말 순서·시간 등을 언론이 유심히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주도권 잡기 차원에서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회담에 늦기 일쑤여서 ‘지각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개를 기피하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만날 땐 대형견을 데리고 간 적도 있다.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에겐 일단 기부터 죽이고 들어가니, 과연 ‘현대판 차르’라 불릴 만하다.

푸틴은 심지어 2022년 9월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점령한 땅을 러 연방에 편입하는 크레믈궁 행사에도 지각했다. 생중계 화면에 잡힌 친러 괴뢰정부 수장들은 불안·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 푸틴이 등장하고 나서야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푸틴이 2023년 9월 김정은을 만날 땐 30분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기화하는 전쟁 와중에 러시아가 북한 도움을 얼마나 갈구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열흘 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만났다. 대선 후보 시절 미국 방한단을 맞을 때 직사각형 탁자의 좁은 면 쪽에 앉아 ‘왕처럼 상석에서 접견했다’는 논란을 빚은 뒤 집무실 탁자를 원탁으로 교체했던 윤 대통령이 이번엔 여당 대표를 굳이 기다란 사각 탁자 맞은편에 앉혔다. ‘독대’가 아닌 ‘면담’임을 고수하며 배석한 비서실장은 한 대표 바로 옆에서 카메라 앵글에 함께 잡혔다. 대통령의 굳은 표정, 팔을 쭉 뻗어 탁자를 짚은 자세, 메모 용지와 필기구 하나 없는 배치도 위압적이었다. 한 대표가 좋아하는 제로 콜라를 준비한 배려는 사진 한 장에 금세 가려졌다.

회동 다음날, 애초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친한계에서는 의전에 대한 볼멘소리부터 나왔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건 결과가 아니라 20분 넘게 밖에 세워놨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가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한 인사를 산책 사진 안에 나란히 담는 넌센스, 한 대표를 떠나보낸 뒤 진행된 만찬 자리에 추경호 원내대표를 부른 사실까지, 회동 모양새에 관한 비평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그간 김건희 여사 문제 해법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용산을 압박해왔으니 대통령이 불쾌감을 가졌을 법하다. 그래도 기왕 만나기로 했다면 최소한의 격식은 갖췄어야 한다. 냉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면서 요청도 단칼에 거절하니, 여론은 더 쌀쌀해진다. 때로는 메시지보다 태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여론이다.

윤 대통령은 차르나 왕이 아니다. 한 대표는 시작부터 기를 죽여놔야 할 상대나 검사 후배가 아니다. 국정 운영 핵심 파트너인 집권당 대표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 대통령이 남은 기간 4대 개혁을 완수하고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치권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여당과의 긴밀한 공조가 수반돼야 한다. 수시로 만나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만날 때마다 ‘빈손’에 뒷말까지 무성하니 씁쓸한 노릇이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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