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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나는 도넛과 커피를 먹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새파랬다. 막 도착한 KTX에서 내린 사람들이 출구로 몰려가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행가방과 두툼한 백팩,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덩달아 묵직해진 겉옷들을 걸치고 메고 끌며 그들은 바삐 걸었다. 성심당 쇼핑백을 몇 개나 들고 오는 사람은 차림새가 단출했다. 나도 친구와 대전에 가서 빵을 사 온 적이 있었다. 오전 일찍 출발해 빵을 먹고 욕심껏 구매한 뒤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해서는, 뭘 했더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다. 반가사유상을 아주 오래 보았고 이후에도 잊지 못해 또 갔더랬지.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나 하며 나는 기차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넛이 몹시 달았고 커피는 따뜻했는데 문제는, 내가 탔어야 하는 기차가 11시2분 출발이었다는 점이다. 11시46분, 나는 여전히 기차역에 있었다. 문제지, 이건 큰 문제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챙겨간 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문장 사이를 유영하다 주위가 소란해지면 기차역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평소에는 통로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장소에 머물러 있자니 어색했다. 내게 기차역은 탑승게이트를 확인하고 짐을 추스르고 객차번호판 아래 꼿꼿이 서 있다 냉큼 떠나는 곳이었는데. 뭐가 달라졌더라.

오전 9시, 나는 집 앞에서 광명행 간선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명까지는 한 시간가량이 걸렸고 내가 타야 할 포항행 기차는 11시2분발.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주말에는 간선버스의 배차 간격이 40분 정도로, 길이 막히는 정도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버스에 타자마자, 차들로 빼곡한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기차를 놓쳤구나 생각했다. 놓칠지도 모른다거나 놓치면 어쩌지 같은 것이 아니라 명백한 확신이었다.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예매표를 취소했다. 다음 열차는 오후 1시20분 출발로 좌석이 전부 매진이었지만 입석표를 팔고 있었다. 열차를 놓친 것도, 입석으로 기차에 타는 것도, 오후 일정이 비틀어진 것도 전부 처음이었다.

나는 11시10분쯤 광명역에 도착해 손을 씻은 후 도넛가게로 들어갔다. 달콤한 냄새를 맡으며 포항에서 만날 사람과의 약속 시간을 조정했다. 계획보다 두 시간쯤 늦게 포항에 도착하겠지만 5시에 진행될 행사에는 늦지 않을 것이다. 입석표를 예매했지만 기차가 출발할 때쯤 나 같은 사람이 포기한 표 덕분에 좌석을 얻게 되겠지. 모든 게 다 자연스럽게 흘러갈 거고 이 일은 해프닝에 불과해져 누군가와 대화할 때 불현듯 끌려 나오게 될지 모른다. 그때 내가 기차를 놓친 적이 있거든. 누군가 나도, 하며 동조할 테고 우리는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해 떠들어대겠지.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포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읽었어야 할 책을 기차역에서 읽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포항에서 온 연락 덕분에 아쉬운 마음이 깨끗이 가셨다. “포항은 지금 비바람이 몹시 거셉니다. 우산 있으신가요?”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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