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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함에 놀라고… 아리아 ‘네순 도르마’에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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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13 14:08:35 수정 : 2024-10-14 18: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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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19일까지 서울 송구 KSPO돔
푸치니 ‘투란도트’를 거장 영화감독·오페라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작품
컨테이너 55대 분량 들여온 베로나 축제 ‘투란도트’의 화력한 무대세트와 의상 등 거리 풍성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의 뛰어난 노래와 베로나 축제 대표하는 지휘자 다니엘 오렌 악에 귀호강
일부 미숙한 운영과 관객의 관람 태도는 옥에 티…‘이동·촬영 금지’ 안내 등 개선 시급

기대를 모은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하 베로나 축제)의 대작 오페라 ‘투란도트’ 막이 올린 12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KSPO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 눈이 휘둥그레지는 압도적인 무대 위로 공연이 본격화기 전부터 짐승처럼 몸을 웅크린 200여명이 양쪽에서 우르르 나와 무대를 가득 채웠다. 투란도트 공주의 강압 통치에 고통을 겪는 백성 역할을 맡은 합창단과 연기자들이다. 이들 군중은 공연 내내 극적 효과를 강화하는 배경 역할을 한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야외 오페라 축제 무대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 이름이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인 이유다. 매년 6∼9월 열리는 베로나 축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13년 베르디(1813∼1901)의 ‘아이다’ 공연을 올리며 시작됐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서기 30년 지어진 고대 로마의 3만 석 규모 원형 경기장이다.

 

이 작품은 푸치니(1858∼1924)의 ‘투란도트’를 이탈리아 출신 거장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가 연출한 것이다. 제피렐리 판 ‘투란도트’는 1987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후 이 극장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고, 2010년 베로나 축제 무대에 처음 올랐을 당시 ‘아레나 디 베로나의 웅대한 공간에 맞춤한 투란도트’란 찬사를 받았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푸치니의 유작으로 1926년 초연된 ‘투란도트’는 얼음같이 차가운 면모로 나라를 통치하는 공주 투란도트와 공주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냉혹하지만 아름다운 투란도트가 결혼 조건으로 낸 수수께끼 3개를 칼라프가 목숨을 걸고 풀어낸 후 극적 긴장이 고조된다.

 

푸치니는 칼라프를 대신해 희생하는 시녀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한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투란도트와 칼라프가 끝내 사랑을 하게 되는 결말은 푸치니 후배 작곡가인 프랑코 알파노가 마무리한 것이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이날 KSPO돔을 찾은 많은 관객이 너비와 높이가 각각 약 50m와 20m에 달하는 무대와 가수·합창단·연기자·무용수 등 500명 정도가 등장하는 웅장한 규모에 놀랐다. 앞서 올 여름 베로나 축제가 끝나자마자 컨테이너 55대 분량의 ‘투란도트’ 무대세트와 의상, 공연 장비가 국내로 옮겨졌다. 출연자와 의상·분장·무대 설치 담당자 등 100명 가까운 현지 ‘투란도트’ 인력도 함께 왔다.

 

베로나 축제 첫 내한공연 재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 축제 예술 부감독은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투란도트’는 거장 제피렐리가 극장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며 “아레나 디 베로나에선 다른 (연출가의) ‘투란도트’ 공연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해서 제피렐리 판을 계속 공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투란도트’를 그대로 한국에 가져오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도 입이 벌어질 만큼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럴 만했다. 중국 황제의 황궁 등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 연출과 함께 주역 가수들의 호소력 짙은 노래와 안정감 있는 연기, 베로나 축제의 대표 지휘자인 다니엘 오렌이 이끈 음악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아레나 디 베로나와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도 투란도트 역을 맡은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는 얼음처럼 차가운 권력자 투란도트 공주 자체였다. 칼라프 역의 테너 마틴 뮐레도 세계 정상급 스핀토(서정적이면서도 밀어붙이는 힘이 강한 음색) 테너답게 귀를 즐겁게 했다. 그가 ‘투란도트’ 최고 명곡인 3막의 칼라프 왕자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열창할 때 전율이 느껴졌다. 앙코르를 기대한 듯 관객들의 갈채가 오래 이어지기도 했다. 투란도트 못지 않은 비중인 시녀 류 역의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류의 비련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이탈리아의 유명 베이스 페루초 푸르라네토를 칼라프의 아버지 티무르 왕으로 만나게 된 것도 반가웠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닌 초대형 공연장임을 감안해 일부 음향 장치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노래와 대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렸고, 합창단 130명가량이 부르는 합창도 풍성했다.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다니엘 오렌은 명성 그대로였다. 베로나 축제의 장인답게 음악이 극 흐름에 어울리고 무대 위 가수들의 호흡에 잘 맞도록 조절하면서 질감이 훌륭한 소리를 뽑아냈다. 1975년 스무 살 나이로 폰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현역 최고 오페라 지휘자로 손꼽히는 그가 지휘봉을 잡은 것만으로 공연장 전체를 휘감는 존재감이 묵직했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19일 공연까지 투란도트는 디카·올가 마슬로바·전여진, 칼라프는 뮐레·아르투로 차콘 크루즈, 류는 시칠리아·줄리아 마쫄라가 번갈아 연기한다. 대부분 객석이 무대와 멀어 출연진 얼굴과 표정이 잘 안보이는 만큼 오페라글라스(망원경)을 챙겨가면 좋다.  

 

다만 첫날 공연에선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과 일부 관객의 바람직하지 못한 관람 태도로 옥에 티가 있었다. 관람 후기를 보면 ‘막이 전환될 때나 공연 중간에 좋은(비싼) 자리로 이동하는 관객들, 공연 중 사진·동영상 촬영하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주최 측이 제대로 제지하지 않았다’거나 ‘인근 음악 공연장 소음 차단이 안 됐다’며 오페라 감상에 방해받았다는 불평이 적지 않았다. 최저 5만원부터 최고 55만원까지 8개 구역 좌석별로 구분된 표 값과 관객 몰입도를 감안해 입장할 때 ‘좌석 이동 및 촬영 금지’ 안내를 명확히 하고 공연 중 그러한 행위를 엄격히 제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글 자막 화면이 무대 양쪽 끝에서 20여m씩 떨어진 상단에 2대만 설치된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공연과 자막을 함께 봐야 하는 관객들은 고개를 자주 돌리느라 성가실 수 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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