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기의 대결’이 ‘최악의 경기’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 세계뉴스룸

입력 : 2024-09-28 13:08:41 수정 : 2024-09-28 13:08: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난 8월 파리 올림픽에선 시합에 나서지도 않고 동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과거 남자 역도 105㎏+급에서 국가 대표로 활약한 전상균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12년 전인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4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 3위에 올라 동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 루슬란 알베고프가 금지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뒤늦게 도핑 테스트에서 드러났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알베고프의 동메달을 박탈하고 전씨를 파리 올림픽에 초청해 그에게 동메달을 수여했다. 지금은 조폐공사에서 근무한다는 전씨는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챔피언스파크의 시상대 위에 올라 메달 수상자로서 영예를 누렸다. 올림픽은 런던에서 치르고 메달은 파리에서 받은 셈이다.

 

지난 8월9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챔피언스파크에서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역도 105㎏+급 4위 전상균씨가 시상대에 올라가고 있다. 그는 당시 3위를 차지했던 러시아 선수의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12년 만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합뉴스

동계 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하계 올림픽 시상대에 서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국과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단체전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당시 미국은 은메달, 일본은 동메달을 땄는데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1위 팀인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속했던 카밀라 발리예바가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도핑 테스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발리예바의 점수가 0점으로 처리되며 2위 미국, 3위 일본의 순위가 한 계단씩 올라 미국이 금메달을, 일본은 은메달을 각각 얻게 된 것이다. IOC는 두 나라 남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도 파리 올림픽에 초청해 색깔이 달라진 새 메달을 전달했다. 2년 만에야 나온 공정한 시합 결과에 선수들은 환호했다.

 

러시아 운동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은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올림픽이 체제 경쟁의 무대였던 냉전 시기 옛 소련부터 그랬다고 한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긴 IOC는 올림픽 무대에서 ‘러시아’라는 국가 명칭과 그 국기, 국가 등 사용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러시아 선수들은 정식 국가가 아닌 ROC 소속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나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이후로는 ROC조차 올림픽에서 퇴출됐다. 그해 2월 올림픽 종료 직후 러시아가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침략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파리 올림픽에선 ROC마저 출전이 금지되고 러시아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서울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24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육상 100m 시합 광경. 캐나다 선수 벤 존슨(왼쪽)이 1위를 차지한 뒤 오른팔을 들어 자축하는 가운데 라이벌인 미국 선수 칼 루이스(오른쪽)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존슨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경기 사흘 뒤인 9월27일 IOC는 금지 약물 복용을 이유로 존슨의 금메달을 박탈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도핑 파문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일어났다. 그해 9월24일 남자 육상 100m 종목에서 캐나다 선수 벤 존슨이 미국 선수 칼 루이스를 누르고 1위에 오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 직후 소변 검사에서 금지 약물 성분이 검출됐다. 2차 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IOC는 존슨에게 직접 청문회에 출석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존슨은 참석을 거부한 채 ‘고의성은 없었다’는 취지의 서면 답변서만 제출했다. 결국 IOC는 시합 사흘 뒤인 9월27일 존슨의 금메달 박탈을 공식 발표했다. 은메달을 땄던 루이스가 금메달의 새 임자가 됐다. 당시 둘의 시합은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엄청난 관심을 모았는데 ‘최악의 경기’로 끝나고 말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수스 '상큼 발랄'
  • 수스 '상큼 발랄'
  • 김태리 '정년이 기대하세요!'
  • 김신록 '매력적인 미소'
  • 정채연 '여신의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