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학 드라마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제일 앞에 교수가 앞장서고 이어 하나의 무리로 회진하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교수가 늘어가고 세부 진료 분야가 나뉘면서 과장이 모든 환자를 회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교수들은 한 분야를 깊게 볼수록 연구, 진료역량, 진료 명성 구축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세부, 세세부 전문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현재 추세이다.
레지던트는 인턴 수련 후 해당 전문과목에 진입한 사람을 말하는데, 수련 후 전문의를 취득한 사람의 진료역량은 일반 전문의(general specialty) 수준의 역량을 뜻한다. 이는 일반 외과 전문의, 일반 내과 전문의 수준으로서 일반적인 수준의 전문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며 해당 전문과목의 학회가 정하고 있다.
레지던트는 매년 새롭게 들어와서 일반 전문의 수준으로 수련을 받아야 하지만, 전공의 처지에서 높은 중증도와 희귀 질환을 주로 접하는 상급종합병원 환경이 수련에 늘 좋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의 선택으로 종합병원에 1, 2차 경증 환자가 많이 내원하는 것이 오히려 전공의 수련에는 더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난도 높은 중증 시술이나 수술을 경험하기보다는 경증 사례부터 경험하는 것이 수련 과정에는 더 맞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턴 시절 지방의료원에 파견 가서 평소 대학병원에서 접하지 못했던 지역사회 의료의 실상, 1·2차 의료기관의 다양한 환자군을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의료원 과장님들의 믿음과 지지로 주치의가 되어 응급실, 병실에서 환자를 돌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또한 전공의 때에는 지방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에 파견 가서 대학병원과 또 다른 진료환경, 다양한 환자 사례, 지역사회 의료 등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만성 정신질환자의 재활에 헌신하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17년 전부터 대전 인근 수련병원의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집단 정신치료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신치료에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지역 개업의와 봉직의 선생님들이 같이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전공의 수련 과정 연구를 해오면서 상급종합병원 위주의 수련에서 벗어나 3차, 2차, 1차, 공공의료기관을 같이 엮어 수련을 시키는 지역별, 권역별 수련을 주장해 왔다. 이는 최근 네트워크 수련, 혹은 다기관 공동수련으로 불린다. 유사한 형태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일부 전문학회 차원에서 상급종합병원과 의료원 사이의 공동수련을 시작했고, 지방 의과대학 학생 실습을 지역과 연계하고 있다. 논어에 나오는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말처럼 전공의는 지역사회의 여러 다양한 분야의 역량 있는 지도전문의들을 통해 육성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수련 후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곧바로 사회에 나와서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이 몇 가지 있다. 현재 전공의 수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에서 전공의가 주치의로서 직접 진료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처럼 환자와 보호자는 수련병원에 입원할 때 전공의들의 진료 참여를 기꺼이 허락해야 한다. 성실한 수련을 위해서는 충분히 전공의 수련에 시간을 할애할 교육전담 지도전문의도 확보돼야 한다. 전공의 교육을 잘하면 그 모든 이득은 오롯이 환자와 사회로 돌아간다. 이를 위해 우수한 교육전담 지도전문의의 육성과 함께 전공의 수련에 대한 사회와 국민의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선우 충남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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