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예산은 ‘고강도 긴축’ 기초로 짜였다. 정부는 올해보다 3.2% 늘어난 677조4000억원 규모로 내년 예산을 편성했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올해 지출증가율 2.8%보다는 높지만,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전망치 4.5%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지다.
씀씀이를 줄여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데 반대할 이는 없다. 국가채무가 내년에는 127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건전재정은 당연하다. 특히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2.9%로 묶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공언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기다. 2025년 예산안 기조가 긴축재정이 적절하냐는 의문이다. 최근 경기를 진단할 때 한목소리로 나오는 것이 ‘내수 부진’이다. 수출은 괜찮은데, 내수가 살아나지 않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하며, 그 이유로 “내수 회복이 미약하다”는 점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내수 부진의 원인으로 고금리와 고물가, 부동산 등을 꼽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고차방정식의 영역이다. 특히 금리 인하는 가계대출 확대와 부동산 가격 폭등을 가져올 수 있기에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 인하 효과를 제때 기대하기 어렵다면 재정을 통한 내수 진작 방안이 나와야 한다. “금리 탓”만 할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년 예산안에는 내수를 살리기 위한 항목을 찾을 수가 없다. 나아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로 가뜩이나 부진한 건설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올해 대규모로 삭감된 점을 고려하면 ‘원상회복’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 같은 현금성 지원 예산은 아니더라도 내수 진작을 위한 ‘카드’가 전무하다.
내수 진작뿐 아니다. 윤석열정부 3년 차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게 없다. 민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보건·복지·고용분야 예산 증가폭은 2023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 마디로 ‘윤석열표 예산’이 없다.
윤석열정부 들어 줄곧 이어진 감세로 나라살림이 빠듯해지면서 쓸 돈이 더욱 줄었다. 감세로 인한 세수결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정작 써야 할 때 쓰지 못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등장한 게 ‘전 정부 탓’이다.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정부는 5년 동안 400조원 이상의 국가채무를 늘렸다. 재정 부담이 크게 늘면서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을 벗어나기 위한 확장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집권 3년 차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오는 12월2일 확정까지 상임위원회와 예결위에서 여야가 치열하게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보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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