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31일 대의원총회에서 강경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정부와의 싸움을 “전쟁”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는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을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총회에선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 전환도 논의했으나, 전환하지 않고 현 집행부를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임시대의원총회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정부와 정치권을 성토했다. 김성근 의협 대의원은 투쟁선언문에서 “대통령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됐다고 한다. 수시모집이 곧 시작되지만 선발은 12월”이라며 “수시모집 정원 확정이라고 미리 (고개를) 떨구지 말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싸움은 선제공격을 한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치는 쪽이 지는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 싸움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김 대의원은 또 “교수들이 힘겹게 버텨오던 대학 병원도 응급 의료부터 무너지고 있다. 연일 언론에서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이 일어날 거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면서 “이런 꼴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총회 인사말을 통해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하고 의료 시스템 붕괴라는 절벽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다”며 “이제 단순히 의대 정원,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간호법에 국한된 투쟁일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생명불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시작은 윤석열 정권이 했지만 우리는 의료 전문가 단체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분명한 결착을 내야 한다”고도 말했다. 임 회장은 지난 26일부터 의대 증원과 간호법 입법 등 정부 의료 정책에 반발해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8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대한 비판도 빗발쳤다. 간호법은 진료지원(PA) 간호사의 합법화가 골자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세부 내용은 법 시행령으로 정해진다. 의협 대의원회의 김교웅 의장은 “(국회의원들이) 법과 원칙, 절차를 무시한 채 통과시키라는 명령하에 일사불란하게 아무 생각도 없이 친위부대처럼 (간호법을) 통과시켰다”며 “우리 모두는 10년 후를 생각해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병원장과 병원의 보직을 가진 의대 교수를 향해 “단지 의사가 환자 곁에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고, 개원의들에겐 “젊은 의사들에게 선배 의사들의 행동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간이다. 지금 바로 일어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총회에선 ‘의대 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에 대한 투표도 진행됐다. 투표 결과 참여자 189명(총원 242명) 중 찬성 53명, 반대 131명, 기권 5명으로 안건이 부결됐다. 임 회장 등 현 회장단이 의대 증원 저지에 대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라 비대위가 대정부 투쟁을 이끌도록 하자는 의도였으나,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다만 임 회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는 리더십에 타격을 받은 모양새다. 의협 조병욱·조현근 대의원은 지난 28일부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청원 동의를 받고 있다. 청원은 다음달 27일까지 진행된다. 회원의 4분의 1이상이 동의하면 발의된다. 이들은 “의협이 임 회장의 임기가 시작된 이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고, 사직 전공의들과 휴학 중인 학생에 대해서도 분란만 만들어냈다”며 “아무런 정책도 사업도 없는 말만 앞세우고 뒷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해 부끄러움은 회원들의 몫으로 남겨왔다”고 꼬집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이날 총회에 참석해 “의협과 임 회장은 14만 의사를 대표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따지면서 “감당하지 못하면 물러나야 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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