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게 자신에게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고 묻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명론(正名論)이라고 부른다. 공자의 정명론은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모난 술잔인가”라는 말로 잘 설명할 수 있다. 모난 술잔은 모난 술잔이라고 불러야 하고, 모난 술잔이라고 불린 술잔은 반드시 모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단어의 소리인 시니피앙과 단어의 의미인 시니피에가 일치해야 온전한 단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를 확대하여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여,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다문화’라는 용어에도 적용해 보았으면 한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1941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한 multicultural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Multicultural은 multi와 cultural을 합쳐 만든 말로, ‘여러 문화와 관련된’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를 한자어 ‘다문화’라고 옮긴 데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 즉 시니피에이다. 미국인들은 multicultural이라는 단어를 통해 ‘여러 문화’를 떠올리지만, 한국인들은 ‘다문화’라는 단어를 통해 ‘외국인’, ‘동남아인’부터 떠올린다. 예를 들어, ‘다문화가정’ 하면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아니면 그 반대로 구성된 가정을 떠올린다. ‘다문화학생’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외국인인 가정의 학생을 가리킨다. ‘다문화축제’에는 중국관, 일본관, 베트남관은 있어도 한국관은 없다. 이는 한국인은 다문화라는 단어를 자기와는 관련짓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외국인이나 동남아인이 ‘여러 문화’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은 그것이 포함하는 것이 엄연히 다르다. ‘여러 문화’ 속에는 자기 문화도 포함되지만, ‘외국인, 동남아 문화’ 속에는 자기 문화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다문화’ 속에 자기와 자기 문화를 포함하지 않는 것은 지난 60년간 학교와 사회에서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배운 탓이다. 한국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좀 더 단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 하나의 민족이고 단 하나의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20년 한 유전자 분석 회사가 한국인의 DNA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자의 혈통 유전자 평균값은 한국인 49.6%, 일본인 25.1%, 중국인 20.7%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민족의 DNA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봐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영향으로 전통문화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시 공자의 정명론으로 돌아가 한 가지 제안하자면, ‘다문화가정’은 ‘이주배경가정’으로, ‘다문화학생’은 ‘이주배경학생’으로 바꾸어 불렀으면 한다. 자국 남자와 외국 여자가 결혼해 이룬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반면에 ‘이주배경가정’은 서양 선진국에서도 흔히 쓰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사용하는 용어이다. 외국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문화사회 속에 살고 있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면 국제이주라는 배경을 가진 것뿐이다. 한국 사회의 다문화 인식 개선은 다문화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 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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