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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하나뿐인 붓… 전통을 고집하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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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5 09:42:42 수정 : 2024-08-25 09: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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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붓 연구소 ‘석필원’ 필장 유필무

전통 붓 연구소 석필원(石筆苑)공방은 땡볕에 옥수수가 익어가는 충북 증평군 도안면 한적한 농촌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충북 무형유산 제29호 필장(筆匠) 기능보유자 유필무(64) 장인의 작업 공간이다. 유 장인은 자신만의 고집을 지키며 48년째 전통 붓을 제작하고 있다.

유필무 필장이 충북 증평군에 위치한 전통 붓 연구소 ‘석필원’ 공방에서 붓대에 자신만의 문양을 조각하고 있다. 유 필장은 충북 무형유산 제29호 필장(筆匠) 기능보유자로 전통 붓을 제작하고 있다.

공방에 들어서니 붓 제작에 사용되는 작업 도구와 양털, 대나무 묶음 등이 있다. 다시 작은 문을 여니 전통 붓을 제작하는 작업실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전통 붓이 벽 양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업대에는 붓 제작에 필요한 공구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장인은 거의 모든 시간을 3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머무르며 전통 붓 제작에 정성을 쏟는다. 필장이란 붓(筆)을 만드는 공예기술을 가진 장인(匠人)을 뜻한다. 충북 충주 앙성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유 필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3세에 일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생계를 위해 식당, 가발공장 등에서 밤새워 일하며 지냈다.

‘석필원’ 작업장에 완성된 다양한 크기와 용도의 전통 붓이 전시되어 있다.
3평 크기의 ‘석필원’ 공방에서 유필무 필장이 붓의 쓰임에 맞는 크기로 붓대로 사용되는 신우대를 자르고 있다.

“16세 때 친척 권유로 붓 공방에 들어갔어요. 붓에 대한 지식이니 관심 없이 갔는데 완성된 붓을 처음 보는 순간 붓을 만드는 일은 가치가 있고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더라고요.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지필연묵(紙筆硯墨)이라는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붓은 모두가 한 번쯤은 쥐어 봤을 법한 친숙한 우리의 전통 서화(書畵) 도구다. 붓은 초가리(붓털), 붓대, 꼭지, 꼭지 끈, 각통으로 구성된다. 유 필장은 자신의 붓에 무모해 보일 만큼 전통을 지키는 집요함을 보인다. 전통 방식으로 모필(동물의 털로 만든 붓)을 완성하는 데는 족히 1년 이상 걸린다. 모두 50단계가 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모든 동물의 털은 기름을 함유하고 있다. 유 필장은 1차 손질한 원모를 1년간 무거운 다듬잇돌로 눌러놓아 기름을 제거하는 전통의 방식을 사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털이 엉기고 먹물을 머금는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탓이다.

붓의 중요한 재료인 양모에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차 손질한 원모를 1년간 무거운 다듬잇돌로 눌러놓는 전통의 방식을 고집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털이 엉기고 먹물을 머금는 능력이 떨어진다.
전통 붓을 제작하는 각종 도구. 유필무 장인은 작업에 용이하게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유 필장은 자신의 붓을 차별화하기 위해 붓대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는다. 수작업으로만 제작되는 유 필장의 붓은 각기 모양과 문양이 달라 하나뿐인 유일한 붓으로 탄생된다.

“제가 만든 붓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아요. 고집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제가 지키고 싶은 붓에 대한 마음이에요.”

붓의 중요한 재료인 양모에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차 손질한 원모를 1년간 무거운 다듬잇돌로 눌러놓는 전통의 방식을 고집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털이 엉기고 먹물을 머금는 능력이 떨어진다.
전통 붓 연구소 ‘석필원’ 공방에서 유필무 장인이 자신이 만든 붓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 필장은 전수자 육성이 쉽지 않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어렵게 배워봐야 생활이 안 되니 문제”라는 것이다. 아들이 대를 이어 배우기를 바랐지만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 필장이 무더위에 온종일 이어진 붓 작업에 땀으로 흐트러진 긴 머리를 정갈하게 정리해 질끈 묶는다. 그러곤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어두침침한 공방으로 들어간다. 전통 붓을 지키려 하는 장인의 뒷모습에선 옛것을 고집하는 자부심과 전통의 맥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교차한다.


증평=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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