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스라엘에 ‘피의 보복’ 다짐
유가 폭등, 물류 대란 발생할 수도
북한 동향에도 경계심 늦추면 안 돼
이란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이스라엘에 ‘피의 보복’을 다짐하면서 중동에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동의 최대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에 들어가 1973년 4차 중동전쟁에 이어 ‘5차 중동전쟁’이 터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증폭된다. 하니야는 지난달 30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을 찾았다가 다음날 숙소에서 살해됐다. 당초에는 암살 무기로 미사일이나 드론이 거론됐지만, 그가 묵은 귀빈용 숙소 건물에 두 달 전 몰래 설치됐던 폭탄이 원격조정으로 터지며 살해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는 하마스 후원세력이자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 공개 모욕을 준 것으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란과 하마스는 그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고 아야톨라 알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스라엘에 직접 보복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10개월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반군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어 중동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판국이다.
하메네이는 1일 테헤란에서 거행된 하니야의 장례식도 집전했다. 타국 인사의 장례식을 직접 챙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헤즈볼라·후티·하마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을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충돌하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수행해 온 이란은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대가로 첫 이스라엘 공습을 강행하기도 했다. 다른 이슬람권 중동 국가에서도 하니야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위대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니야의 암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에 대한 공격은 매우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란이 보복에 나설 경우, 재반격이 이뤄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방어를 위한 추가 무기 배치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혀 광범위한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중동에서 무력 분쟁이 일어나면 오일 쇼크와 물류 대란 등으로 세계 경제가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가뜩이나 불안한 국제 유가가 추가로 대폭 상승할 수 있어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유가는 폭등하고 물류 대란이 가중돼 고삐 풀린 인플레에 추가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 수입되는 중동산 원유는 대부분 이 해협을 통과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3위 원유 생산국인 이란의 보복 다짐으로 유가는 이미 들썩이고 있다.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일 4.26% 급등했다. 이는 2023년 10월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 폭이다. 농축산물 가격 불안에 이어 유가까지 오르면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중동지역에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해외 건설 수주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중동에서 무력 분쟁이 일어나면 반미 가치 연대 관계인 이란과 북한의 무기 거래가 확대될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이란이 이스라엘 공습에 사용한 탄도미사일에 일부 북한제가 사용됐고 이란산 자폭 드론 샤헤드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관측도 제기되지 않았나. 러시아·이란과의 밀착으로 자신감을 얻은 북한의 대남 도발 수위가 높아진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움직임에도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된다. 중동발 충격이 경제와 민생, 안보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정부는 시나리오별로 촘촘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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