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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신(神)만이 아는 그 이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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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06 14:23:54 수정 : 2024-06-06 14: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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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1950∼1953) 당시 미국은 한국을 돕기 위해 연인원 178만9000명의 장병을 파병했고 그중 3만6000여명이 전사했다. 영국은 그 다음으로 많은 5만6000명을 보냈으며 이 가운데 1100여명이 전투 도중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따르면 오늘날 이곳에 묻힌 유엔군 장병 중 영국인은 890여명인 반면 미국 출신은 40명가량에 불과하다. 부산에서 영면에 든 유엔군 전사자 숫자로만 따져 영국은 참전 22개국 중 단연 1위에 해당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연합뉴스

왜 그럴까. 같은 영어권 국가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영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빚은 결과 아닌가 싶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망자(亡者)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디에서 보냈는지가 중시되는 풍조라고 한다. 누군가 해외에서 유명을 달리했을 때 현지에 묘소를 조성하는 것에 거부감이 적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은 고인이 가족 곁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나라 밖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그가 누구이든 반드시 본국으로 운구돼 유족에게 보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히 미군은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했다가 세상을 떠난 장병 유해를 수습해 고국의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 다만 유전자(DNA) 감식 기술이 일천했던 과거엔 이것이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 어렵사리 시신을 찾더라도 훼손이 심하면 신원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흔히 ‘무명용사’로 불린다.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총 4곳의 무명용사 묘역이 있다. 조성된 순서로 따져 제1차 세계대전(1921), 제2차 세계대전(1958), 6·25전쟁(1958), 베트남전쟁(1984) 무명용사 묘역이 그것이다. 이후 DNA 기술이 발전하며 무명용사는 자취를 감췄다. 전투 도중 실종자야 있겠으나 적어도 무명용사는 없게 된 것이다.

 

제69회 현충일인 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한 뒤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제69회 현충일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 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했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온) 모든 영웅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슬픔을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미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추모비에는 ‘오직 신만이 아시는 미국 군인(an American soldier known but to God)이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무명용사라고 부르는 분들이 하늘에서나마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되찾았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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