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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신경영’ 30년 이후 삼성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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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05 23:16:33 수정 : 2024-06-05 2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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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경쟁 뒤처져 AI 열풍서 소외
파운드리도 TSMC 격차 더 벌어져
현실 안주 만연하고 리더십도 표류
반성·성찰로 다시 혁신 DNA 깨워야

‘반도체의 나라’ 대만이 들썩이고 있다. 정보기술(IT)박람회 ‘컴퓨텍스 2024’가 4일부터 나흘간 열리고 있는데 글로벌 빅테크업계의 거물들이 대거 모였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최강자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2026년 출시하는 차세대 AI 칩(가속기) ‘루빈’을 공개했다. 그는 “대만과 우리의 파트너십이 세계의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대만 TSMC가 도맡아 만든다. 그는 수도 타이베이의 야시장에서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을 만나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다. 인텔·AMD·퀄컴·ARM 등 빅테크 기업의 CEO와 창업자도 신제품을 선보이며 AI 전략을 공표했다. 그 덕에 존재감이 미미했던 컴퓨텍스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대만의 AI 파워를 각인시켰다.

내일은 삼성전자에도 역사적인 기념일이다. 31년 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을 선언했다. 신경영은 혁신 DNA를 깨우는 각성제로 작용했고 삼성은 브랜드 가치 글로벌 5위, 반도체매출 1위의 초일류기업으로 변신했다. 신경영은 삼성의 고문이던 일본 출신의 디자이너 후쿠다 다미오가 내부경영실태를 진단한 ‘후쿠다 보고서’에서 촉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보고서는 삼성이 일본 기업 베끼기에 급급하면서 스스로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창조적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지금 삼성은 위기징후가 가득한데 후쿠다 보고서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 최초 개발과 양산 기록을 쏟아내던 혁신과 독기는 온데간데없다. 30년간 압도적 1위를 고수해 온 메모리반도체조차 초격차 기술이 퇴색했고 파운드리(위탁생산)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10년 전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이 선대회장의 경고는 까맣게 잊힌 거 같다.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시장에서 만년 2등이던 SK하이닉스에 뒤처진 건 삼성의 흑역사로 남을 듯하다. 하이닉스가 HBM을 처음 개발했지만 양산은 삼성이 앞섰다. 삼성 경영진은 HBM 연구개발을 미적대다 2019년 개발팀까지 해체했다. D램이 수익을 내는 터라 HBM의 잠재력을 오판한 것이다. 경영진은 AI 열풍에 새 시장이 열렸는데도 애써 무시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삼성은 1년이 다 가도록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젠슨 황이 그제 “삼성의 최신 HBM이 인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기약이 없다. 젠슨 황의 발언에 춤을 추는 주가는 삼성의 딱한 처지를 드러낸다.

삼성은 메모리와 설계, 파운드리, 패키징을 다 하는 ‘턴키 서비스’를 자랑했지만 외려 화를 키웠다. 애플 휴대폰, 퀄컴의 AP(두뇌 칩) 스냅드래곤 위탁생산이 TSMC에 넘어갔다. 구글도 내년 중 삼성이 맡았던 스마트폰 칩 생산을 TSMC로 옮겨갈 것으로 전해진다. 빅테크 기업으로서는 모토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와는 달리 경쟁제품을 만드는 삼성에 맡기는 게 부담스럽다. 이재용 회장이 2030년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에서 1등을 하겠다고 선언한 지 5년이 흘렀지만 TSMC와 점유율 격차는 그 사이 약 30%포인트에서 50%포인트로 커졌다.

공교롭게 삼성 기념일에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선언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7일 조합원들의 단체 연차휴가를 시작으로 총파업까지 가는 단계를 밟겠다고 한다. 전삼노 조합원이 전체 직원의 22% 수준인 2만8400명에 달하며 대부분 반도체부문(DS) 직원들이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라인이 멈추지 말란 법이 없다.

사방에서 악재가 터지는데 총수의 비전과 통찰력은 보이지 않고 스타 경영진도 찾기 힘들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성공에서 생기는 자만, 원칙 없는 사업확장, 위기 부정, 구원 요청, 회복 불가의 5단계를 거쳐 몰락한다고 봤다. 삼성은 이런 징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나. 늦기 전에 내부 반성과 성찰로 다시 혁신과 도전의 DNA를 깨워야 할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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