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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에 관대한 대선 후보들… 국민들은 “역차별” 불만 [심층기획-2024 슈퍼선거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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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03 06:00:00 수정 : 2024-06-03 08:57:57
멕시코시티=글·사진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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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선 (중)

빈곤 등 피해 阿·중남미 등서 몰려와
현직 대통령 ‘총알 대신 포옹’ 강조
베네수엘라 출신엔 지원금 등 제공
후보들도 해결책보다 ‘美 지원’ 초점
국민들 “내국인도 가난한 사람 넘쳐”

멕시코 거쳐 미국으로 불법 입국 시도
10년 새 5배 급증… 美 대선까지 좌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에서 불과 3㎞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오다노 브루노 광장에는 불법(서류 미비) 이민자들이 설치한 200여개의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텐트촌 안에는 나무로 지은 듯한 임시 화장실부터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만든 빨랫줄까지 생활용품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1일(현지시간) 오전 11시쯤 텐트촌에서 만난 이들은 휴대용 버너로 늦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구슬치기를 하는 등 열악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들은 아이티 출신이다. 갱단이 장악한 아이티는 현재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텐트촌에 거주하고 있는 한 청년은 이름을 묻는 기자에게 “얼굴이나 이름이 기사에 나가면 추방당할 수 있다”며 “정부에서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경계했다.

1일(현지시간) 미국으로 향하는 불법 이민자들이 형성한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지오다노 브루노 광장 텐트촌에서 한 이민자 가족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미국 국경과 거리가 있는 멕시코시티 등에 머무는 이들은 대부분 국경을 넘으려다 보안 당국에 발각된 사람들이다. 보안 당국에 의해 국경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진 불법 이민자들은 새로 정착할 곳을 찾는다. 마약 카르텔(범죄조직)의 납치 표적이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수도 멕시코시티는 멕시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여겨진다.

불법 이민자를 바라보는 멕시코 국민의 생각은 복잡하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찾아 조국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음식과 옷가지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통행을 방해하고 치안, 위생 등 골칫거리로 전락한 이들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텐트촌 바로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안드레아(30)는 “(텐트촌이) 장사에 영향을 끼치고 경제적 타격도 입는다”며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우리(인근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한테도 이롭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불법 이민자들로 인한 피해를 직접 체감하지 못하는) 다른 동네나 멀리서 온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멕시코로 몰려드는 불법 이민자들

멕시코 곳곳에는 빈곤, 전쟁, 재해 등 다양한 이유로 중남미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다.

공직자 2만700명을 선출하는 선거를 하루 앞둔 1일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빅토리아(65)는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멕시코에 머무는 불법 이민자에 대해 “인권의 관점에서 불법 이민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맞지만 멕시코 국민 중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며 “고용이든 금전적인 도움이든 가난한 자국민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을 지지한다면서도 불법 이민자에게 관대한 그의 정책에 대해선 “멕시코 국민 중에서도 직장이 필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1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지오다노 브루노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보이는 불법 이민자 텐트촌의 모습. 

‘총알 대신 포옹’을 강조하는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문제에 너그럽다. 지난 3월 멕시코 정부는 모국으로 돌아가는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에게 매달 110달러(약 15만2000원)씩 6개월간 660달러(약 91만4000원)를 지원하는 협정을 베네수엘라 정부와 체결했다. 알리시아 바르세나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멕시코에 체류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선 일자리 1만개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불법 이민자로 골치를 앓고 있는 미국에도 중남미 국가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를 위한 거주지와 일자리 등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 대선 후보들 역시 시민들의 불만에도 자국 내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미국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선이 유력한 여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요구처럼 미국이 멕시코에 더 많이 투자해 북쪽(미국)으로 가는 이민 압박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이벌인 우파 야당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 또한 멕시코의 이민자 보호를 미국이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대선까지 좌우하는 이민자 문제

멕시코를 통해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으려는 이민자는 2021년 이후 급증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의미하는 남서부(south west)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의 수는 2014년 57만50명에서 2021년 173만4680명으로 급증했다. 2022년 237만8940명, 지난해에는 247만567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다. 이민자 수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2020년 45만8080명에서 173만명대로 약 4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밀입국이 감소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염병 확산 방지를 이유로 도입한 이민자 신속 추방 정책 ‘타이틀 42’가 시행돼 국경 밖에서 추방되는 불법 이민자의 수는 집계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1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지오다노 브루노 광장 중앙에 놓인 동상 주변에 아이티 등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의 텐트가 즐비해 있다.

불법 이민자 증가에 따른 국경 통제 문제는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불법 이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법 이민을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인의 비율이 사상 최고치인 55%로 조사됐으며, 지난해 12월 CBS방송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에게 더 강경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응답이 63%나 됐다. 불법이민에 대한 반감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틈을 타 혐오 발언으로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 또는 “국경을 폐쇄하겠다“와 같은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지지자를 집결하는 중이다.

시민들의 불안함을 인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도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AP통신은 백악관이 미국 국경 관료가 대응해야 하는 불법 이민자 수가 일주일간 하루 평균 4000명을 넘어서면 이후 들어오는 망명 신청을 차단하고 입국을 자동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라며 4일 바이든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 내에서도 미국의 불법 이민자 정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다. 멕시코시티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하시엘 발데스(32)는 “미국의 이민 정책은 위선적”이라며 “(미국은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고 있지만) 캘리포니아주 남쪽은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이민자들이 없다면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3D 업종은 어렵고(difficult), 비위생적이고(dirty), 위험한(dangerous) 업무의 약자로 건축업, 광업, 제조업 등을 일컫는다. 그러면서 “미국 자체도 이민자의 나라면서 중남미 사람들에 대한 편향적인 생각을 갖고 이들을 범죄자 취급한다”고 비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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