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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가면을 쓰고 민주주의 허물어뜨리는 극단주의 세력 민낯

입력 : 2024-05-18 06:00:00 수정 : 2024-05-16 21: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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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박세연 옮김/어크로스/2만2000원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피데스당이 2010년 선거에서 압승하며 재집권에 성공했을 때, 오르반이 헝가리의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최다 득표자가 당선되는’ 선거 시스템 덕분에 53% 득표율로 의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 피데스당은 단독으로 헌법을 고칠 수 있게 되자 실행에 옮겼다. 오르반은 자신의 당이 차지한 압도적 과반을 적극 활용해 사법부와 언론, 선거관리위원회를 차례로 장악하며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또 정치·선거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등 정적들과 비교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이는 모두 ‘합법적인’ 방식이었다. 한 헌법재판소 판사가 “(오르반이) 합헌의 허울을 쓰고 위헌적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할 정도였다. 오르반은 어떤 유혈 사태나 대규모 체포도, 정치적 수감이나 추방도 없이 거의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성숙했던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렸다. 이를 두고 버이너이는 “척추뼈들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헝가리 민주주의의 척추는 전체적으로 망가졌다”고 일갈했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만2000원

책 2장 ‘독재의 평범성’에 소개된 내용이다. 책은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6년 전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하며 쓴 스테디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시작됐다면 이 책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면서 극단적 사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분석한다. 2021년 1월,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점거했고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정치 테러를 독려했다. 이는 21세기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단해 보였던 미국 민주주의 체제는 왜 위험에 빠진 것일까. 책은 미국의 헌법과 선거 제도, 현대사와 함께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진 과정을 살펴보면서 극단적 사상을 가진 소수가 어떻게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지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자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극단주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은밀히 지원하는 주류 정치인들은 소수의 지지만으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이용해 다수의 국민을 움직인다. 다양한 구성원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느냐, 소수만이 권리를 누리는 독재 국가가 되느냐. 저자들은 낡은 민주주의 체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자들이 극단주의 세력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더욱 끔찍한 미래를 마주할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정당·의회 민주주의 경고등이 진작에 켜진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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