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이명박(MB)정부 시절 MB의 친형과 측근을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 정권의 간섭이 없던 점을 긍정 평가하며 “쿨(cool)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검찰총장이던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역대 어느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했는지 묻자 본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답이었다. 기대를 ‘완벽히’ 저버린 답변에 질의했던 의원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석했던 일부 검찰 간부도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기색이었다.
그 무렵 서울중앙지검에선 ‘조국 사태’ 수사가 한창이었다. 검찰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 의원의 질의엔 ‘검찰이 문재인정부 때만큼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맘껏 한 적이 또 있었느냐’는 시각이 담긴 듯했다. 하지만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검사 윤석열’은 ‘세련된’ 정무적 발언 대신 경험에 기반한 ‘솔직함’으로 정면돌파하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이 했던 ‘쿨한’ 경험을 정작 윤석열정부 검사들은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계기가 됐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려던 서울중앙지검장이 교체됐다. 그 휘하에서 근무하던 차장검사 4명 전원이 ‘물갈이’됐다. 대검찰청에서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참모 7명 중 6명이 뿔뿔이 흩어졌다. 윤 대통령은 총장이던 지난 정부 후반기 법무부 장관과 맞서다가 참모들이 교체되고 수사지휘에서도 배제되자 세간에서 자신을 ‘식물총장’이라고 부른다고 공식석상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인 정부의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하려다 또 다른 식물총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다시 시간을 돌려, 국감장에서 ‘검사 윤석열’을 질타했던 민주당은 조국 사태 전만 해도 검찰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줬다. ‘검찰개혁’을 강조하며 그 해법은 ‘인사권 행사’라던 사람들이 정작 집권해선 근 3년간 이어진 ‘적폐 수사’ 과정에서 ‘가장 날카롭게 벼린 칼’에 비유되는 검찰 특별수사부(현 반부패수사부)에 힘을 실었다. 그러더니 ‘우리 편’ 수사가 개시되자 검찰을 악마화하며 ‘개혁’을 외쳤다.
요즘은 야권 인사들을 겨냥한 각종 검찰 수사를 넘어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까지도 민주당의 공격대상이 됐다. 여전히 검찰이 민주당 편이었다면, 윤 대통령이 총장 시절 눈 한 번 질끈 감았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들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민주당 대표는 2017년 성남시장 시절 대선에 도전하며 국정농단 특검팀 윤석열 수사팀장을 검찰총장에 기용하겠다고 공약했던 그 사람이다.
각자의 처지가 달라지니 생각도 행동도 가치관도 덩달아 바뀐 듯하다. 각자가 지켜온 철학이 오늘날 자신들을 있게 한 게 아니었나.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당초 지켜온 철학은 있었나. 어제의 우군이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돼 상대의 몰락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서도 보기 힘든 활극을 현실로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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