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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항복 이틀 전 전사한 미군… 79년 만에 훈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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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11 13:09:43 수정 : 2024-05-11 13: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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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다 끝난 1945년 8월13일
오키나와에서 군용기 사고로 숨져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기 직전 전사한 미국 참전용사의 동생이 79년 만에 형을 대신해 미군이 주는 훈장을 받았다.

 

1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하와이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 윌프레드 이케모토(89)에게 이날 미 육군의 퍼플하트(Purple Heart)가 수여됐다. 퍼플하트란 전투 도중 부상하거나 숨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일본계 미국인 윌프레드 이케모토가 10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전사한 형 하루유키의 사진(왼쪽), 그리고 사후 79년 만에 미군이 수여한 퍼플하트 훈장을 든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케모토 본인은 2차대전 마지막 해인 1945년 당시 10세로 군에 입대할 나이가 아니었다. 퍼플하트의 주인공은 이케모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형 하루유키(미 군사정보국 소속)다. 하와이 대학에 다니다가 참전한 하루유키는 미군이 잡은 일본인 포로를 심문하고 일본어로 된 서류를 해석하는 등 임무를 수행했다.

 

1945년 8월13일 필리핀에서 출격한 미군 C-46 수송기가 오키나와로 향했다. 수송기에는 하루유키와 같은 일본계 미국인 장병 10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연합국에 항복한 이후 미군의 일본 점령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송기가 오키나와 착륙을 시도하던 중 그만 절벽에 부딪혀 박살 나고 말았다. 이 사고로 하루유키를 비롯해 수송기에 타고 있던 31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이틀 뒤인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전사자 31명 중 2명에게만 퍼플하트가 추서됐다. 일본의 항복 소식에 들뜬 미군 당국이 행정상 착오를 일으킨 탓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아무튼 하루유키 등 29명의 전사자 유족은 속으로 슬픔을 삭여야 했다.

 

미군은 최근에야 오류를 인정하고 전사자 29명에게 퍼플하트 수훈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2차대전 역사를 연구한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미군이 전사자들의 생존해 있는 유족을 찾아 나선 가운데 이날 하루유키의 동생 이케모토처럼 신원이 확인된 유족 5명에게 먼저 퍼플하트가 전달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8월13일 오키나와에서 전사한 일본계 미국인 병사 하루유키 이케모토(왼쪽)와 최근 미군이 사후 79년 만에 고인에게 추서한 퍼플하트 훈장. AP연합뉴스

이케모토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늦게나마 형이 미국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할 뿐”이라고 말했다. 동생에 따르면 하루유키는 일가족 가운데 처음 대학에 들어갔고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다고 한다. 이케모토는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해 “아마도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인 것으로 기억한다”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이날 미군을 대표해 같은 일본계 미국인이자 예비역 육군 대장인 폴 나카소네 전 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이 퍼플하트를 이케모토에게 건넸다. 마침 나카소네의 부친도 하와이 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군사정보국에서 일했다. 나카소네는 “군사정보국에서 활동한 모든 선배 군인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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