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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지난 2023년 8월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서부 리하이나의 한 교회가 산불로 인한 화염에 휩싸여 있다. AP연합뉴스

“종말이 온 것 같았다.” 

 

지난해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을 덮친 산불 피해를 지켜본 주민 다니엘 설리반이 CNN에 이렇게 말했다. 화마(火魔)가 훑고 지나간 섬 곳곳은 처참했다. 피해도 미국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만했다. 10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규모가 약 55억2000만달러(약 7조2350억원)에 달했다. 불길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숨진 이들이 많았는데 이를 목격한 주민들은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마우이 산불을 키운 건 가뭄과 강풍이었다. 근본적 원인은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날씨가 단기간, 급속도로 확산된 ‘돌발가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수량 부족으로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발생하는 일반 가뭄과 달리 수주만에 급속한 수분 증발이 이뤄지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새로운 기후 재난이다. ‘기후의 역습 ‘돌발가뭄’ 잦은 여름산불 불렀다’(4월29, 30일자·이민경 기자) 시리즈는 마우이 참사를 낳은 돌발가뭄이 ‘우리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상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을 피할 수 없더라도 그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돌발가뭄 현상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이 지난 2023년 8월21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주요 피해 지역인 라하이나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름에 산불이 늘어난 이유

 

날씨가 풀리는 봄, 등산길에 자주 볼 수 있는 현수막이 ‘산불 조심’이다. 등산객이 많은 봄, 가을, 건조한 겨울에 주로 산불이 발생하지만 습도가 높은 여름 산불도 늘고 있다. 폭염 등에 따른 돌발가뭄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폭염일수와 돌발가뭄 발생 빈도 추이를 보면 상관성을 알 수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폭염일수(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의 수)가 각각 24일, 35일이었던 2016년과 2018년에 돌발가뭄 발생 횟수는 각각 145회, 127회로 유독 많았다. 

 

전세계적으로 돌발가뭄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40년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은 모로코의 알마시라 댐이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한 소년이 앉아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 같은 돌발가뭄은 농업용수 고갈, 농작물 피해 등을 키우는데다 마우이 산불처럼 대형 산불 피해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돌발가뭄 전문가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제이슨 오트킨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에선 돌발가뭄으로 끔찍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재난이 이어지자 가뭄 완화 계획을 세웠지만 기존 가뭄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에 불과했다”며 “가뭄이 빠르게 진행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재난 대비 계획을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점차 ‘뉴 노멀’이 돼가는 돌발가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물 기근’ 국가라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우리나라는 가뭄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물이 풍부한 나라라고 생각할 법하다. 평소에 우리가 사용하는 물의 양, 큰 부담이 없는 수도요금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일상적으로 물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물 부족 국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물 스트레스 국가’에 포함된다. 2019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 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물 스트레스 지수는 25∼70%에 속했는데 사용 가능한 수자원 대비 물 수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물 사용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다. 

 

지난 2015년 대구에서 ‘제7차 세계 물 포럼(World Water Forum)’이 열렸다. 엑스포 전시장 분수대에는 더러운 식수로 고통받는 아이를 표현한 설치물(광고인 이제석 작품)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수자원 관리는 가뭄 대비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던 ‘4대강’ 사업도 국가 물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부처별로 분산된 국내 가뭄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국가통합가뭄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가뭄 예측 정보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자발적인 물 절약 참여도 필요하다.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말로만 물 수요관리를 한다고 발표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수치와 방법으로 국민에게 물 절약 방법을 알려줘야한다”고 지적했다.

 

P.S. 취재한 이민경 기자에 물었습니다. 

 

-돌발가뭄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 봄 광주·전남 지역에 극심한 가뭄으로 공장이 멈춰 섰다. 가정에선 물을 아껴 쓰자는 절수 캠페인이 일어났다. 외국에서만 발생하는 재난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한다는 걸 체감했다. 가뭄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반 가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돌발가뭄에 대해 알게 됐다. 생소하지만 심각한 재난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기사를 기획하게 됐다.”

 

-돌발가뭄에 따른 폐해는 어떤 게 있나. 

 

“돌발가뭄의 핵심은 아주 빠른 속도로 물이 사라지고 땅이 마른다는 것이다. 일반 가뭄처럼 농업용수 확보와 농작물 재배를 어렵게 하는데, 문제는 예측이 어려워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미국 하와이 산불처럼 습한 여름날에도 공기를 건조하게 만들어 ‘여름 산불’이라는 새로운 재난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

 

-돌발가뭄, 물 부족에 대한 정부와 국민 인식이 전반적으로 낮은데 이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개념 자체를 알리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발가뭄을 취재하다 보니 개념 자체가 생소한 탓에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전문가나 정부 기관마다 재난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었다. 지난 2월 행정안전부는 국민 안전에 새로운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잠재적 재난위험 요소 중 하나로 돌발가뭄을 지목하고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이 재난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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